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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을 비판한다
[#사진1]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이 신문지상을 뒤덮고,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원칙이라도 되는 양 언급되고 있다.

대체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이란 무엇일까.

이 모호한 개념은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에 제출된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유래한다. 그것의 정의는 ‘인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일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미래 세대가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능력이다’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현재의 욕구와 미래의 욕구를 둘 다 긍정하겠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골자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에서는 단지 재생가능한 자원에 대한 관리에 역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숲을 벌목해 나무를 만들고 책이 되는 과정에서 이 나무라는 자원이 재생 가능할 정도로 벌목해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는 셈이다. 그러나 자원관리에 대한 부분은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에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생 불가능한 자원 혹은 오염된 지구환경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추호도 찾을 수 없다.

한 마디로 간단히 얘기해서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은 모호한 절충안이며, 그 자체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전망 없는 개념이다. 현재의 개발욕구와 과거의 파괴행위를 정당화하고, 미래적 전망 속에 투사하려는 노력 속에서 개발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개발에 욕망으로 가득 찬 후진국의 열망을 제어할 수도 없을 뿐더러 교토의정서 따위는 거들떠도 안보면서도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25% 생산하고 있는 미국을 제어할 수조차도 없는 개념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보다 근본적인 생태문제를 지적하고, 철저한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개념이 아니라 현재의 생산 중심주의와 개발모델을 정당화하는 가장 모순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마존 산림은 철저히 파괴되고 있으며, 재생 가능한 자원조차도 오염돼 재생 불가능의 영역으로 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서구사회가 100년의 역사 동안 이룩했던 생산력의 발전을 단 몇 년 동안 개발해내고 있다. 그 와중에서 일어난 환경파괴는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이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우리가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이라는 개념에 여전히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멈출 수 없는 개발의 욕구가 여전히 우리 내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방증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뉴타운 계획이나 아파트 건설 계획이라도 나올 것 같으면 새로운 부가 창출되고 있고, 그것에 편승하지 못하면 우둔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1만 년의 역사 동안 풍화되고 퇴적된 산허리를 동강 잘라서 호텔을 짓고, 위락시설을 만들고 그러는 것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한 힘을 보증하는 위대한 사업이라는 망상을 버려야 할 시점이 왔다. 자연이 훼손되면 우리 인간에게도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은 현재의 욕망을 변경시키지 않고도 미래까지 계속되리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산업적 측면에서 환경의 요소를 도입하게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근본적인 생태적 지향성을 중립지대로 몰아넣었다는 데 있다. 생태적인 탈산업화의 과정에 있는 한국사회는 개발독재의 망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며, 그들의 부에 대한 약속의 대가가 얼마나 철저히 약탈과 파괴로 나타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한 선명한 입장 속에서 다시 진정한 지속가능성이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근본주의적인 생태지향성의 내면에 접속해 인간이 지구라는 혹성에서 자연과 식물과 동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생태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의 일말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비판하고자 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 속에서 발호하고 환경에 대한 파시즘적인 욕망에 대해 우리가 대결하기에는 이 개념이 너무 연약하고 취약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근본적인 새로운 환경담론을 계발하고 활성화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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