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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
사형제 폐지, 응징과 보복이 아닌 연민과 화해로 가는 길

[#사진1] 요즘 나라 안팎으로 ‘사형제도 폐지’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국제 엠네스티에서 2006년을 ‘한국의 사형제 폐지를 위한 집중 캠페인의 해’로 선정하면서 종교·시민단체 등에서 사형제 폐지의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고, 국회에서도 사형제 폐지를 위한 법안 심의에 앞서 공청회를 개최(4월 4일)했으며, 법무부에서도 사형제도 존폐 여부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형제 폐지를 위해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그 열기가 높다. 물론 ‘국민의 법 감정’을 내세운 정치권 및 일반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과연 사형제도가 폐지될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살인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피해 유가족들이 슬픔과 분노를 떨치고 가해자를 용서할 뿐 아니라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간 열 사람의 이야기를 생생히 담은 책이 나왔다. 도서출판 샨티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레이첼 킹 지음·황근하 옮김)가 바로 그것.

살인에 의한 피해와 고통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용서 이야기는 누구의 발언보다 의미가 깊고 설득력이 크며 또한 감동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 사람은 모두 미국의 사형 피해자 유가족 모임인 MVFR(Murder Victim's Family for Reconciliation, 화해를 위한 살인피해자유족회·www.mvfr.org)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로, 한결같이 용서를 통해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고, 사형을 통한 ‘보복’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며, 아무리 추악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에게도 회개의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이들 열 사람을 꼼꼼히 인터뷰한 뒤 이들의 가족이 살인자에 의해 얼마나 끔찍이 죽어갔는지, 가족의 살해 소식을 접한 뒤 겪을 수밖에 없었던 혼란과 갈등, 복수의 감정 등을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용서를 통한 치유의 경험이 어떠했는지, 살인자를 용서하고 만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다른 가족들과는 어떤 갈등 혹은 아픔을 겪었는지, 그리고 용서와 화해 이후 이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을 이들의 육성과 섬세한 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누구도 가족이 살해되기 전까지는 ‘사형’이라는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없고, 더군다나 사형제 폐지라는 주장을 입에 담아본 적이 없다. 이들은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을 겪은 뒤 비로소 사형은 또 하나의 합법적 살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가해자를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들 그로 인해 자신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다는 것을, 또한 사형 후 살인자의 가족 역시 자신처럼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될 것임을 생각하며 자기 가족을 죽인 살인범을 구명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은 물론 법적 투쟁까지도 불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은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응보와 보복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사법 체계 또한 화해와 연민(사랑)이 아닌 응징과 파괴(폭력)를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사형은 범죄예방 효과가 없다’ ‘오판의 위험성이 있다’ ‘생명권을 침해한다’ 등 사형제도가 안고 있다고 지적되는 여러 문제점(이른바 국제 엠네스티에서 선정한 ‘사형제 폐지 10가지 이유’에 집약돼 있는) 가운데서도 피해 당사자들이 한마음으로 도달한 가장 중요한 결론은 ‘사형제도가 자신들을 치유해주지 못하며 오히려 그 치유를 더디게 한다’는 것이다.

유괴범에 의해 납치된 딸이 살해되는 아픔을 겪은 마리에타 재거라는 여성이 그 유괴범을 용서하고 그에게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느낄 뿐 아니라 유괴범의 어머니를 찾아가 포옹하고 화해하는 이야기(1장), 두 사람을 죽이고 도망치던 살인범에게 살해된 경찰관의 누나 마리아가 동생의 살인범이 있는 감방으로 찾아가 용서하고 사형당하는 그날까지 편지를 주고받는 이야기(2장), 끔찍한 방법으로 누나를 죽이는 데 협력한 여성을 용서하기까지 마음의 고통을 처절히 겪은 뒤 그녀를 구명하기 위해 온힘을 기울인 론 칼슨의 이야기(3장)에는 그 잔인한 살해 수법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뉘우칠 수 없을 것 같은 자가 마침내 뉘우치고 피해 가족의 눈물겨운 용서를 통해 죽음 직전에 새로운 생명을 얻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담겨 있다.
한 정신지체자에 의해 아버지를 무참히 잃고 본인도 죽음 직전까지 갈 정도로 큰 자상을 입었던 수전 보슬러는 “살해범에 대한 복수심과 증오를 품고 있는 한 한 순간도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말하고(4장), 할머니를 죽인 소녀가 사형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하던 빌은 어느 날 돌아가신 할머니라면 자신을 죽인 여자아이를 용서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 뒤 미움이 연민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그후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희망의 여행’을 조직하고 MVFR을 만드는 데 적극 기여한다(5장).

그런가 하면 린다 화이트라는 중년 여성은 딸이 살해되는 충격에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새로이 심리 상담학을 공부하고 마침내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피해자·가해자 중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9장). 청소년의 총에 의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짐 카미사 역시 살해범을 용서하는 과정에서 죽은 아들을 위하는 길은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얻고 ‘타리크 카미사 재단’을 만들어 청소년 범죄 예방 교육에 헌신하고 있다(10장).

이해인 수녀가 ‘믿기 어려울 만큼 존경스럽고 놀라운 감동의 책’이라고 추천문에 썼듯이, 살인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으로서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해자를 응징해야만 자신이 평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이 책은 피해자들의 그런 마음과 자세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그를 용서하지 않고는 자신이 치유될 수 없었다”고 말할 뿐이다.

대부분은 그런 경험을 거쳐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 적극 나서지만 그 과정에서 사형제를 지지하는 가족들과의 갈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이것은 가해자를 용서한 것 이상의 인내와 사랑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영적으로 성장해가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복수는 상대방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용서는 아무리 포악한 가해자도 변화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을 또한 한 걸음 진전시켰다. 이 책은 이처럼 극악한 상황에서 폭력과 보복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나아가 험한 세상에 작은 평화를 보탠 사람들의 슬프고 아름답고 용기 있는 이야기이다.

김금실  silk1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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