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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월요일의 남자
[#사진1]신촌에서 진행된 저녁강의를 마치고 제자들과 간단히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선생님은 어떠세요? 선생님도 월요일의 남자세요?” 낭랑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한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산스럽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식탁 위의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월요일의 남자? 새로 나온 영화 제목이냐?”고 가벼운 농담으로 응대했는데, 이어지는 제자의 설명이 재미나다.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그가 사는 곳은 목동의 어느 아파트인데 처음에는 요일이나 시간 구분 없이 24시간 상시 가능하던 재활용쓰레기 배출이 언젠가부터 월요일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단 하루로 제한됐다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유난히 20~30대 젊은 부부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A동에서 벌어지는 이색풍경이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문제(?)가 되는 A동을 찾으면 말쑥한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커다란 분리수거함 앞에서 ‘열심히 집중해서 정성스레’ 분리수거를 하는 진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월요일의 남자’라는 다소 분위기 있는 표현은 바로 제자와 제자의 두 살 위 언니가 붙인 애칭이었다. 그는 이처럼 자상하고 친절하며 가정적인 남성이 자신의 이상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함께 식사를 하던 대부분의 여성들이 동의한 것은 물론 심지어 김칫거리를 다듬던 식당 아주머니까지 월요일의 남자를 지지했다.
이때부터였다. 무심히 지나치던 아파트 입구 재활용수거함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삼삼오오 둘러서서 부지런히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도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됐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내 일상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월요일의 남자에 대한 여성들의 아낌없는 애정을 이해하게 됐다. 일주일치 재활용 쓰레기량은 예상외로 엄청나다. 또한 까다로운 규정에 따라 세세하게 쓰레기를 구분·배출하려면 1분 1초가 아쉬운 스피드 시대에 시간이 아깝고 마음이 급하다. 바쁜 일상에 일주일에 한번 있는 분리수거일을 놓치면 이 또한 낭패다. 일주일을 꼬박 넘쳐나는 재활용쓰레기와 더불어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우리의 하루를 한 번 들여다보자. 이른 아침 눈을 뜨고 냉장고 문을 열어 유산균 요구르트를 한 병 마셨다. 빈 요구르트 병 발생. 샤워를 하던 중 샴푸와 린스가 떨어졌음을 발견했다. 빈 샴푸와 린스 용기 발생. 출근길에 지하철역에서 배포하는 무가지 2부를 읽었다. 종이쓰레기 발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빈 종이컵 발생. 퇴근길에 일식집에 들러 딸아이가 좋아하는 회초밥을 샀다. 빈 포장용기 발생. 저녁식사 후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빈 주스병 발생.
단적인 예지만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재활용 쓰레기가 배출되는지 체감할 수 있다. 특히 플라스틱 용기의 경우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그 사용량과 배출량이 많아 놀라울 정도다. 연중 상시 배출이 가능했던 아파트단지의 재활용 쓰레기 배출에 특정한 날, 특정한 시간이라는 불편한 규제가 생긴 가장 큰 이유도 엄청난 양의 재활용쓰레기들을 수거일까지 보관할 공간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쓰레기 처리방법은 크게 매립·소각·재활용의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매립은 매립지 확보가 가장 큰 걸림돌이고, 소각은 대기오염의 문제가 만만치 않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재활용이라는 방법이 나날이 늘어가는 쓰레기량을 줄일 수 있는 최선책처럼 대두·강조돼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성실한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만이 해답이 아니라는 이견도 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더라도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데 소요되는 인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월요일의 남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력을 기울인 것에 비해 정작 재활용 쓰레기들의 활용 가능 범위는 예상외로 훨씬 제한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얼마 전 각종 언론을 통해 소개된 옥수수로 만든 썩는 플라스틱의 등장은 눈길을 끈다. 월요일의 남자와는 거리가 먼 필자이지만 기존 플라스틱과는 달리 썩는 플라스틱이라고 하니 별도의 재활용을 강요받을 필요가 없으리라는 얕은 생각에 일단 마음이 동한다. 옥수수로 플라스틱을 만든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다. 또한 석유를 주원료로 한 기존 제품들과는 달리 기본 모체가 옥수수이니 소각 및 매립 시에도 환경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듯싶어 안심이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 제품이 과연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기존 제품보다는 가격이 높을 테니, 소비 수요가 많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시장이 좁아서 사용이 일반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는 부분이다.
월요일의 남자를 향한 애정을, 월요일의 남자를 자청하는 세심함을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들로 선회해 보는 것은 어떨까. 당장은 조금 높은 가격에 금전적인 손실을 보는 듯 느껴지지만, 먼 미래를 바라볼 때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가 아닐는지. 오늘이 아닌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현명함이 새삼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박순주  psj29@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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