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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發 환경권 침해···“법·제도 손질해야”KEI-환경법학회, '환경권 도입 40주년 기념 포럼·국제학술대회' 개최
불평등·저탄소 전환 등 환경권 보호 위한 실질적 권리 강화 대책 시급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인 환경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장이 열렸다.

[서울=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환경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입법을 통해 환경 안전망을 공고히 하고, 지역·계층·세대 간 불평등을 해소하며, 저탄소 경제·사회 구조로 전환하는 등 환경권 보호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뜻하는 환경권은 1980년 제8차 개헌으로 헌법에 처음 도입됐다. 환경 관련법은 이보다 앞서 1963년 공해방지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 현재 72개 법률로 분화됐다.

환경부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한국환경법학회와 함께 최근 서울 영등포구 글래드호텔에서 ‘환경권 40주년 기념 포럼·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전문가들은 ‘환경권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환경권을 실체적 권리로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자연 존중할 권리 포함해야

환경부는 최근 서울 영등포구 글래드호텔에서 ‘환경권 40주년 기념 전문가 포럼’을 열고, 환경권 강화를 위한 입법과제를 논의했다. <사진=이채빈 기자>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올해는 환경권이 도입된 지 40년이 되는 해지만, 뒤돌아봤을 때 국민의 환경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며 “기후변화로 이른바 ‘환경불평등’도 심화돼 추상적 권리로서의 환경권이 아닌 모든 국민이 실질적인 환경 편익을 누릴 수 있도록 입법과제를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지구와사람 대표)의 저서 ‘지구를 위한 법학’을 언급하며 “환경권이 인간을 위한 권리에서 벗어나 자연과 생태에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환경법도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지구 중심주의로 개선하는 방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송옥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도 서면 축사를 통해 “인간과 환경이 함께 보호될 수 있는 가치 지향적인 형태로 환경권이 변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던 80년대와 달리 실질적으로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다.

환경권 보호 범위가 여전히 제한적이며, 인간과 환경을 구분한 채 환경의 파괴가 곧 인간에게도 해롭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점도 지적했다. 송 위원장은 “실제로 자연환경보전법 제46조에는 생태계를 훼손한 자에게 부과하는 부담금 명칭을 법 취지와는 맞지 않게 협력금으로 명시하고 있다”면서 “지난 9월 협력금을 부담금으로 변경하는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환경권 확대, 미래세대 위한 권리

이규용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은 환경권의 미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생명존중’, ‘지속 가능한 발전’, ‘모든 경제주체의 고통 분담’, ‘확고한 법 집행’ 등을 제시했다. <사진=이채빈 기자>

1부 포럼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미래세대를 환경권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먼저 나왔다.

기조연설에 나선 이규용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은 현행 헌법상 환경권 주체는 국민이지만, 아직 미래세대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판례 태도를 꼬집었다. 기후변화가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유엔(UN)을 비롯한 범지구적 차원에서 ‘미래세대를 배려하고 포함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보편적 가치로 정착되는 추세”라면서 “미래세대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부담을 주게 될 분명한 사안에 대해서는 미래세대를 환경권 주체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해석이 이뤄지거나, 어려우면 입법적 해결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파리협정 온실가스 감축 목표대로 모든 국가가 이행한다고 해도 2030년이면 지구 평균온도는 최소한 1.5도 이상 상승하고, 2도 상승하면 기온의 폭발적 상승을 막을 수 없는 ‘티핑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4살 아이가 2030년에는 고작 14살, 2050년 34살 청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후위기는 먼 미래가 아니다.

‘환경권 확장기’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 요구

환경권 도입 이후 실질적인 성과에 대한 평가도 내놓았다. 이 회장은 “제5공화국 헌법에 환경권을 처음 도입했을 때만 해도 입법·행정·사법 등 국가권력 자체가 환경권 구체화에 관심이 없었던 ‘장식용 환경권’ 시대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압축성장 부작용이 본격화되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게임을 개최하면서 ‘환경권 발아기’를 맞았다. 90년대 초반에는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를 거치면서 하수처리와 고도정수처리에 엄청난 국가 예산이 투입, 종량제 시행과 천연가스 버스 도입 등 환경권 보장을 위한 ‘환경정책의 성장기’를 맞게 됐다.

2000년대 이후에는 정책추진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OECD로부터 “놀라운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지만,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등 연이은 피해로 수용체 중심 환경보건문제가 최우선 정책 화두로 등장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플라스틱 문제, 비대면 소비에 따른 폐기물 급증,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피해 등 다른 양상의 환경문제가 발생하면서 모든 경제주체의 고통 분담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제해결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이 시기를 환경권 보장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되는 ‘환경권 확장기’에 들어섰다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환경권 미래를 위한 전제조건

그렇다면 환경권 확장기를 맞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회장은 환경권을 더욱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개인, 기업 등 모두 함께 추구해야 할 원칙 또는 사회적 합의를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환경권의 미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생명존중 ▷지속 가능한 발전 ▷모든 경제주체의 고통 분담 ▷확고한 법 집행을 강조했다. 생명존중은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포괄하는 절대적인 가치이며, 지속 가능한 발전은 후손에 대한 현세대의 배려이자 실천규범으로는 욕망의 절제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가치인 모든 경제주체의 고통 분담에 대해선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모든 경제주체는 환경에 관한 한 빠짐없이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며 “대량생산·소비·폐기 과정에서 최대 이익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작금의 경제체제와 생활문화가 지속하는 한 우리에게 환경권 조항은 서면에 불과하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마지막으로 확고한 법 집행은 앞서 언급한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자 절대적 필요조건이라고 역설했다. 수많은 법률이 실효를 거둬 환경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확고한 집행 의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환경권 명문화 초기 환경보전법과 폐기물관리법 2법 체제였던 환경법이 40년간 노력으로 현재 70여개 법률로 진화했지만, 환경권 보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환경권은 법률로서만 실현되는 추상적 권리”라며 “법 집행에 대한 정부의 결연하고 일관성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경권 조항 이전해 독자성 확보

한상운 KEI 선임연구위원은 환경권 실질화에 필요한 입법과제를 발표했다. <사진=이채빈 기자>

이어진 주제발표에서는 환경권의 실질화를 위해 입법을 통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상운 KEI 선임연구위원은 먼저 환경 헌법 개정 방안을 제언했다. 그는 “여전히 환경권을 사회권으로 이해하는 한계가 있다”며 “지속가능발전과 같이 인간 욕망과 환경의 양립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환경권 보장을 위해 환경권 조항을 사회권 조항과 별도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EI가 2018년 개헌 논의에 맞춰 환경 헌법 개정에 대한 포럼을 운영한 결과 환경권 조항을 사회권 조항과 별개로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과 연계해 총론적 조항으로 옮겨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 헌법 제35조 2항을 삭제하고, 헌법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이 조항에서는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해 환경권을 법률에 유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예방청구권·생활환경조성청구권 등 관련 권리를 직접 보장받기 위해서는 입법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환경에 대한 핵심적 내용과 행사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헌법사항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환경단체 원고적격 인정해야

환경권 실현을 위한 입법과제도 발표했다. 환경단체가 원고가 돼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환경단체소송법을 제정하는 방안이다.

한 연구위원은 “환경단체의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것은 환경권 실질화의 핵심요소”라며 “선진국 가운데 환경단체 원고적격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라고 비판했다. 독일은 환경단체소송제도를 두고 있으며, 영국과 미국은 원고적격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 중국도 민사소송법과 환경보호법에 환경단체 소송을 규정하고 있다.

그는 또 환경단체 원고적격 입법 방법으로 오르후스 협약(Aarhus Convention) 가입을 제안했다. 환경법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환경권 실현을 위한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르후스 협약(Aarhus Convention)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에서 리우 선언 제10조 참여 원칙을 구체화해 만들었으며, 환경문제에 관한 정보접근이용권·의사결정권·사법접근권을 포함하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자연생태계 훼손을 막기 위한 환경단체 소송이나 환경위험 정보에 대한 시민들의 알 권리를 확보하고, 대규모 개발에 앞서 주민들의 의사결정 참여 등 환경민주주의에 대한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밖에도 그는 환경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환경권 보장을 위한 행정 구제 수단의 통폐합 ▷절차참여권리 실질화·의견 재수렴 요건 완화를 통한 환경 행정절차 참여권 강화 ▷환경정보 접근·이용권 보장을 위한 종합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새로운 환경권 구상할 때”

강금실 지구와사람 대표는 지구공동체와 인간을 위한 환경권 강화를 제안했다. <사진=이채빈 기자>

현재의 환경권만으로는 자연을 보전하거나 성장의 내재적 한계를 새로이 설정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강금실 지구와사람 대표는 “환경권은 본질적으로 국가 의무를 수반하지 않는 헌법적 한계를 안고 있고, 실제로 한국사회를 풍미해온 성장 가치와 현실 견제역할을 통한 균형을 이루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 시대 환경권을 새롭게 이해하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한 3가지 접근방식으로 ▷환경권이 개별적 권리이기에 앞서 집합적인 권리의 성격을 가진다 ▷환경이익은 서로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어 동시에 강력한 환경보호 책임이 수반된다 ▷현세대 환경권은 미래세대 권리뿐 아니라 동식물의 존재할 권리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는 점을 제시했다.

인간 중심에서 지구 중심으로

올여름 역대 최장 장마와 홍수 피해를 겪으면서 우리는 기후위기 심각성을 체감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은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했다. 시베리아 폭염과 호주 산불 앞에서 환경권은 생존권의 문제로 확대돼 ‘안정적 기후’에 대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권이 사법에서 여전히 추상적 권리로 인식되고 있으며, 여러 기본권 가운데 하나로 재산권과 이익형량의 대상이라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인간 중심이 아닌 지구 관점에서 법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인간과 동식물의 공통기반인 자연환경이 심각한 피해를 보았을 때 복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또 환경권 보장과 환경보호 책임을 다하는 데 필요한 6가지를 제안했다. ▷‘자연’과의 조화를 국가 목표로 삼아 헌법에 천명할 것 ▷정부는 법률로써 구속력을 갖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준수체계를 마련할 것 ▷정보 접근권과 의사결정 참여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 ▷국가의 전략적 과제 이행을 평가·감시하기 위해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독립적 위상을 조속히 복원할 것 ▷기업의 ‘지속 가능한 환경경영체제’를 구축·실행할 것 ▷법과 문화에 지구공동체 실재성과 가치를 반영할 것 등이다.

한편 이날 2부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메리 우드 미국 오레곤대학교 교수의 ‘자연과 미래세대를 위한 환경권’, 크리스티안 칼리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교수의 ‘헌법을 통한 환경보호-독일과 유럽의 경험’, 로다 베어헤이엔 기후정의 국제네트워크 변호사의 ‘인권과 환경보호 의무에 기반을 둔 기후변화소송’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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