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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일보 창간 25주년 기획인터뷰]
‘응답하라 1998!’···텐유호 사건 재조명
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실낱 희망과 집념의 20년 추적’ 돋보여
  • 대담=김익수 편집대표, 정리=최인영 기자
  • 승인 2018.11.0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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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일보] 최인영 기자 = 연합뉴스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9월 중순 ‘실종 20주년’(2018.9.29)을 맞은 텐유호((MV Tenyu) 사건을 재조명하는 시리즈 기사 10편을 송고해 주목을 끌었다. 텐유호는 20년 전인 1998년 9월 27일 인도네시아 쿠알라항에서 조달청이 발주한 알루미늄 3천6톤을 싣고 인천으로 오던 중 출항 직후 말라카해협에서 현지 해적단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일반인에게는 이미 잊혀진 사건을 20년 가까이 추적하면서 집념을 불태워온 기자가 있다.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의 홍덕화 부국장이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으로나 단기 과제 수행 성격이 강한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빛바랜 사건을 재조명하려고 애써온 동기가 시종 궁금해 지난 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아래는 홍덕화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편집자 주>

소형 목선을 타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의 쿠알라항을 돌아보고 있는 홍덕화 기자 <사진제공=홍덕화 연합뉴스 기자>

Q.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매달려온 동기는

A. 신영주 선장과 박하준 기관장 등 한국인 2명과 중국 선원 12명(조선족 5, 한족 7)의 생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내 아버지, 형제들이 공해상에서 실종됐다면 가만히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나라도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세월이 흘러 올해로 20년째에 접어든 것이다. 2008년 10주년 때에도 회사 게시판에 ‘텐유호 사건 종합취재 필요성’이란 제목의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이 문제를 다 같이 생각해보고, 실천으로도 옮겨보자는 일종의 격문이었는데 반응이 극히 저조했다. 그런데 올해 4월 출범한 회사 내 탐사보도팀으로 전보한 뒤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해 받아들여져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Q. 사건을 처음 인지한 계기는

A. 19년 전인 1999년 7월 연합뉴스 홍콩특파원으로 부임한 이후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글렌 쉬로스 기자가 텐유호 기사를 쓰면서 내게 연락해 왔다. 그가 내보낸 기사에 'Lee Dong Gul'이라는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한동안 취재를 한 바 있으나 홍콩특파원으로서 대만,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주요 지역으로 출장을 다니며 긴급 뉴스들을 다루다 보니 텐유호 취재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2002년 7월 귀국할 때까지 싱가포르와 홍콩 경찰 당국을 상대로 취재를 했으나 이렇다 할 단서도 얻지 못했다.

Q. 지난 5개월 간 취재에 주력한 부분은

A. 무엇보다도 선원 14명의 생사 확인이 우선이었다. 이와 함께 텐유호 실종 이후 사건이 ⓵선상 살인을 동반한 해상 강도 ⓶전통적인 선박과 화물 강탈, 선원 인질 및 화물 약탈 ⓷선박, 화물, 보험금을 노린 다국적 조직범죄단의 '화이트 칼라 사기극'인지 등 사건의 실체와 성격을 규명해보려고도 노력했는데 ⓶번과 ⓷번이 합쳐진 성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Q. 취재 과정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A. 해양경찰청과 검찰의 수사기록이 ‘형사 시효 10년’으로 인해 전량 폐기된 것이다. 5개월 전 취재에 나설 때만해도 검찰에서 중국 공안부가 넘겨준 수사 기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단 한 건의 수사 자료도 없어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했다.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을 수시로 방문해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때로는 이메일과 전화 등으로 읍소해 가며 기타 자료들을 입수했다. 결국 텐유호 관련 문서와 판결문, 또 전·현직 검찰 및 해경 수사관 등 100여명의 증언을 토대로 이 사건을 재구성한 셈이다.

텐유호는 출항 후 쿠알라항을 떠나 오른쪽으로 항해하다가 U자형으로 대만을 거쳐 인천으로 항해할 예정이었으나 해적에게 강탈된 후 반대편(왼쪽)으로 돌아, 미얀마 양곤항으로 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제공=홍덕화 연합뉴스 기자>

Q. 보람이 있었다면

A. 검찰이 1999년 사건을 종결 처리한 뒤 20년 가까이 미궁에 빠져 있던 사건을 다시 부각시킴으로써 재외국민 보호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것이다. 외교부는 사건 발생 국가에 주재하는 공관들을 중심으로 주재국 정부 담당자들을 만나 선원 행방 및 사건 실체를 규명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고 해양경찰청도 나름대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관계자들 모두 ‘국제공조 역량부족’ 문제를 제기했다던데

A. 당시 정부와 수사 당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국제공조를 요청하고, 협조를 얻어내는 방향으로 끈질기게 노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수사 관계자 다수도 국제 공조 부족으로 사건이 유야무야된 측면이 있다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는데 고무적인 일이다. 제2의 텐유호 사건에 대비해 국제공조 역량 강화가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도 수사관들 입에서 나온 것이다.

Q. 주요 성과를 꼽아본다면

A. 중국 경찰이 한국인 용의자 이동걸의 해적행위 가담 혐의와 함께 엄중한 선상폭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수사 자료를 중국 포털 검색 중 찾아낸 일이다. 중국공안부의 홈페이지인 중국 경찰망이 텐유호 사건 처리 결과를 비망록(2013.9.13)에 공개했는데, 이 내용은 한국검찰과 해경 측의 숱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은 내용이다. 이로 인해 검찰은 이동걸을 장물취득 및 증거인멸 교사 혐의 등으로 기소했으나 해적 사건 연루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다. 참고로, 이 수사 자료를 찾아낸 일은 “땀의 소중함을 알려준 쾌거”라고 자평해본다. 금요일 주말부터 밤을 꼬박 새워 18시간 동안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고 중국의 모든 포털을 검색하던 중 찾아냈다.

인도네시아 제3의 항구도시 메단의 벨라완 항구에서 선원들을 상대로 텐유호와 피랍 후 명칭이 변경된 비토리아(Vittoria)호에 대한 탐문 취재 <사진제공=홍덕화 연합뉴스 기자>

Q. 국민안전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남겼던데

A. 국가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재외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과연 국가가 '최소한의 몫'을 했는지에 의문이 들었다. 중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홍콩, 미얀마, 필리핀, 일본 등 사건에 직접 관련된 국가에 주재하고 있던 우리나라 공관들이 당시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려고 힘썼다. 또 남편과 아버지를 찾아달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진정과 탄원에 우리 정부 관련 부서들이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도 살펴봤다.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은 있었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라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20년 묵은 사건을 파헤쳐 재조명해보려는 노력 자체를 평가해주는 시각도 없지 않았지만, 기자의 역량 부족과 인력, 시간 불충분, 주요 관련국들의 정보 제공 기피 등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데는 크게 미흡했음을 고백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 기록 등 사건 관련 자료와 관계자 증언 등이 이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매체나 정부 부서 등의 노력에 어떤 식으로든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텐유호 실종 사건’ 개요>

미궁에 빠진 사건 - 14명 생사 및 사건 실체 규명도 못해

인도네시아 북부 수마트라섬의 쿠알라항에서 조달청에 납품할 알루미늄괴 3006톤(약 36억원 상당)을 실은 화물선 텐유호(2660t급. 파나마 선적)는 1998년 9월27일 오후 10시20분, 힘찬 고동을 울리며 인천항으로 떠났다. 텐유호는 28일 오전 1시경 선박 소유주인 마스모토 기선에 출항 보고를 한 지 3시간 만에 교신이 끊어진데 이어 이날 정오에 필수 절차인 현위치 상황 보고(Noon Report)도 하지 않았다. 마스모토 기선은 29일 자정이 되도록 교신 중단이 계속되자 해상보안청과 국제해사국(IMB) 산하 기구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소재 해적신고센터에 실종 신고를 했다. 한국인 2명을 포함해 ‘선원 14명 행방불명 미스테리’의 막이 오른 것이다. 해적신고센터 등의 요청으로 약 2개월 동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 등 8개국의 해사 기관이나 해군 등이 공중과 해상에서 입체적으로 샅샅이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허사였다. 텐유호는 공해상에서 약 3개월 간 사라졌다가 선명을 Sanei-1호로 위장하고 중국 항구에 입항했다가 이를 수상히 여긴 중국교통부 해양수색대에 적발됐다. 중국 공안이 신고를 받고 승선해보니 주인(선원 14명)과 화물(알루미늄)은 온데간데 없고 인도네시아 선원 16명이 탑승해 있었다. 텐유호가 출항 후 수 시간만에 교신이 중단된 점만으로도 해적에게 강탈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 다수의 견해다. 또 이 선박이 피랍 후 예정 항로를 바꿔 미얀마 양곤항으로 이동해 화물을 환적한 뒤 타국 선원들로 교체되고 4차례나 선명이 변경(텐유호→비토리아호→하나호→스칼렛호→산에이-1호)되는 등 선박 세탁 끝에 중국 항구에 입항되는 등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만 봐도 다국적 국제범죄 조직의 공모에 의한 해적 습격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대담=김익수 편집대표, 정리=최인영 기자  nubooriya@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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