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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레인시티 넘어 '브레인시티'로 나가자물맹 탈출 돕는 빗물 박사 한무영 서울대학교 빗물연구센터장

[환경일보] 서효림 기자 = 비 내리는 창밖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비를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성비가 몸에 닿는 게 꺼려지기 때문이다. 산성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된다는 속설에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챙겨들었다. 한무영 서울대학교 빗물연구센터소장은 이러한 속설은 오해라 말한다. 떨어지는 빗물은 산성이지만 같은 산성비라고 해도 땅에 떨어진 이후에는 중화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진 빗물은 다른 물들에 비해 우리의 생각보다 깨끗하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빗물에 대한 오해를 풀고 빗물을 통해 물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하는 한무영 교수를 만나 레인시티(Rain City)에서 브레인시티(Brain City)로 도약할 수 있는 패러다임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산성비 맞아 대머리 걱정하는 우리는 ‘물맹’

화학적으로 보면 오염되지 않은 대기를 통해서 내리는 빗물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평형을 이루어 pH 5.6으로 산성이다. 이는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디서나, 예나 지금이나 내린 비는 모두 산성비였다. 사람의 피부의 산성도가 5.6이며 식물이 가장 좋아하는 산성도도 pH 5.6 이다. 한무영 교수는 빗물의 억울한 오해에 대해 일본의 온천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어느 온천은 pH가 2.9다. 산성비에 겁을 먹는 사람들이라면 손에 닿는 것도 꺼려하겠지만 평생 그 물을 사용한 그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산성이라고 다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로 나쁜 산성은 아니므로 무조건 산성비와 건강을 연관시키는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빗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물맹’이다.

1인당 하루 평균 쓰는 물의 양은 유럽의 2배

한 교수는 “하루에 얼마나 물을 사용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100리터 정도가 아닐까 한 막연한 대답에 그는 환경부 통계를 제시했다.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하루 평균 사용하는 물의 양은 282리터다. 이는 유럽의 2배에 달한다. 물부족 국가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이 하루에 얼마나 물을 쓰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무영 교수는 “물 부족 국가의 국민이라면 본인이 물을 얼만큼 쓰는지 알고 이것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많이 쓰는지 적게 쓰는지 알고, 그러면 어디서부터 많이 줄일 수 있는지를 찾아내야지 만이 물 부족을 해결하는데 아마 대부분 물전문가, 정치가, 행정가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화장실 물만 아껴도 가뭄과 물 부족 대안

한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생활 속에서 가장 물 낭비가 많은 것이 바로 변기다. 변기의 물은 한 번 내리는 데 보통 12ℓ이 물이 소비된다. 2015년 환경부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가정용수 사용량은 하루에 약 180ℓ. 만약 하루에 변기물을 7번 내린다면 84ℓ의 물이 필요한 셈이다. 따라서 변기를 사용할 때마다 낭비되는 물을 절반으로만 줄여도 가뭄과 물 부족의 대안이 된다는 얘기다. 물 절약과 함께 빗물을 받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 물관리의 시작이다.

분산과 집중의 경제 ‘빗물 저금통’

우리나라에 한 해 내리는 빗물의 양은 1천 300억 톤에 달한다. 내리는 빗물이 하천을 채우고, 지하수를 채우고, 다시 증발하여 구름이 되어 또 비를 내린다. 빗물의 소순환은 기후변화 적응을 넘어 기후를 회복시키수 있다. 물이 기화할 때 발생하는 기화열은 폭염을 막고 채워진 하천과 지하수는 가뭄과 홍수를 예방한다.

그는 빗물을 정화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 설명했다. 깨끗한 지붕이나 땅에 떨어지는 빗물은 간단한 거름 장치와 자연적인 침전만으로 청소나 화장실, 조경용수 등으로 사용할 수 있고 약간의 과정을 더 거친다면 먹는 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내리는 비의 양은 적지 않으나 한 계절에 집중적으로 비가 많이 오는 조건에서는 빗물 관리 방식을 잘 선택해야 효과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현재 우리는 댐과 같이 거대한 저장 시설을 만들어 빗물을 모으고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한 계절에 비가 한꺼번에 많이 내리는 경우에는 몇 군데의 댐에 그 물을 다 모을 수가 없다.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집중과 분산의 병행’을 강조했다. 큰 댐에 빗물을 집중적으로 저장함과 동시에 전체 유역에 걸쳐서 많은 수의 작은 ‘빗물 저금통’을 만드는 것이다. 가정·학교·사업장 등 전국 모든 곳에서 빗물을 저장하면 양적인 면에서 볼 때 커다란 면적에 물을 모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한꺼번에 빗물이 내려가지 않아서 홍수의 위험도 줄일수 있다. 또 먼 곳까지 물을 옮기는 대신 필요한 곳에서 바로 물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매우 효율적이다. 서울대 공대 건물 39동 지하에는 ‘빗물 탱크(250㎥)’가 있고, 샤워 오수를 모아 처리하는 장비가 있다. 비가 올 때는 빗물로, 비가 안올때는 샤워오수 처리한 물로, 이 동 전체에 있는 변기 물로 쓰여지고 있다.

드레인시티(Drain City)에서 레인시티로 전환

지금의 도시와 조례는 홍수방지만을 위하여 모두 빗물을 빨리 내다버리는 식의 드레인시티의 개념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는 빗물의 사용이 먼 나라의 일만은 아니라고 했다. 이미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빗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빗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으는 방향으로 조례를 만들어 정책을 집행하는 이른바 레인시티를 만들고 있다. 가뭄과 홍수의 두가지 고통을 한꺼번에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논리이다.

대표적인 도시가 수원이다. 수원시는 2009년부터 빗물 정책을 추진해 2010년 수원종합운동장 내 우수저류시설(빗물관리시설) 설치를 시작으로 빗물 활용 사업을 본격화했다. 2020년 12월까지 ‘물 순환 선도도시’를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수원시에는 8만 8천리터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모인 빗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도시 곳곳에서 모아 재활용한다. 지하수와도 연결해 거대한 물순환 시스템을 만든다. 레인시티 사업은 안정적인 물 공급, 침수 피해 예방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환경부 시범사업으로 장안구청 청사에 ‘그린빗물인프라’를 조성했다. 청사 마당에 투수 블록, 빗물침투도랑, 300t을 담을 수 있는 빗물 저류조, 지중 침투수로 등을 설치했고 환경부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물 자급률 높이는 것은 사회적 책임

수원시의 발표에 따르며 레인시티사업으로 재활용한 빗물이 8만 5254t에 이른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칭찬할 일이지만 아직 더 해야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일년에 수원시 전체에 떨어지는 빗물의 양 1억5천만톤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한무영 교수는 물 자급률 100%를 달성한 전남 신안군의 기도라는 작은 섬을 소개했다. 섬의 특성상 이 곳은 바닷물의 영향을 받은 지하수 때문에 물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섬에 4톤짜리 탱크를 10대 만들어 빗물을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할 수 있게 한 이후 이 섬은 빗물로 물 자급률 100%를 달성했다. 이를 통해 국제 에너지 글로벌 어워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한무영 교수는 빗물은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한다. 수천만년동안 비가 왔고 그 물을 흘리기 위해 하천이나 개울이 만들어졌는데, 사람이 들어와서 집을 짓고 아스팔트를 덮는 바람에 물 상태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한무영 교수는 지금까지 빗물을 잘 버리는 것이 빗물 관리요령이었다면 이제 ‘모아서 잘 사용하는 것’으로 그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제시하는 빗물 관리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와의 협력이다. 지역에 작은 규모의 빗물 관리 시설을 많이 만들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총체적 관리 통해 다목적 이루는 빗물관리 필수

또, 지금 홍수방지만을 위해 만들어진 빗물펌프장을 예로 들며 다목적을 추구하는 빗물관리를 통해 경제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빗물관리를 위한 시설을 홍수와 물부족·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다목적의 시설로 만들면 쉬는 날 없이 일년 내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홍수연구용으로 꾸며졌던 연구용 옥상 빗물 텃밭은 이제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옥상 위에 빗물을 오래 저장할 수 있도록 설계한 연구 시설이 지금은 주민들과 함께 일구는 공동 텃밭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연구목적으로 만들어진 텃밭이 홍수 방지는 물론이고 열섬 현상을 감소시키고 이웃 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고 자랑하며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옥상 빗물 텃밭의 의의를 설명했다.

더 좋은 대한민국으로 기억될 수 있는 레인시티

지역 공동체를 튼튼하게 해주는 착한 공간이 된 옥상 빗물 텃밭에서 한무영 교수는 “빗물을 이용한 텃밭은 에너지와 물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희미해진 이웃사촌을 되살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이라며 정부 소유의 건축물, 지자체의 주민센터, 도서관, 학교 등의 옥상을 오목형 옥상 빗물텃밭으로 바꾸기 위해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더 나아가 “레인시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 그것이 어떻게 좋은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발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아끼고 잘 쓸 수 있는지, 빗물을 매개로 한 상수, 하수, 지하수, 하천과의 연계를 고려하고, 현명한 시민들과 함께 하는 브레인시티를 제안한다. 한 교수는 전 세계에 레인시티를 넘어 브레인시티의 시작이 대한민국임을 알릴 수 있는 날이 곧 오게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서효림 기자  shr8212@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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