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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환경의 계획적 조성과 지속가능성

강홍빈 교수.
지속가능성은 ‘변화와 유지’의 조화

 

창의와 혁신은 새로운 시대의 화두

 

창의, 창조환경, 창조도시는 21세기에 들어 나타난 새로운 현상인가? 이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진 것은 분명 그래 보인다. 그러나 문명사의 큰 시야에서 보면 결코 창의 창조환경, 창조도시는 21세기 고유한 것이 아니며 인류문명과 함께 해 왔다. 문자의 발명, 과학기술의 발달, 사상의 변천, 문화예술의 개화, 생사과 소비방식의 발달 등 문명사는 곧 창의의 역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창의의 요람이자 오늘의 용어로 창조환경인 도시의 역사가 있다.

 

창조담론의 개화는 21세기의 것으로 보이지만 현상 자체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브로델의 표현대로 도시는 ‘뒤섞고 변화시키며 가속시키는 문명의 변압기’이다. 창의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이고 문명의 역사는 도시의 역사다.

 

다양한 사람들의 집적, 이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류, 이질적인 요소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은 역사속에서 확인된 창의의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은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도시개발과 산업진흥정책만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사회문화적인 조건도 있다.

 

문명사가 곧 창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와서 창의담론이 무성하게 된 것은 구조적인 지층변화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체제의 종식과 유연축적 체제의 등장, 지식기반산업의 대두와 고용구조 변화에 따른 문화소비층의 증가, 보편성보다 차별성, 기능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의 만족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던 문화, ‘복지국가’의 퇴조와 신자유주의 확산, ‘기업가형 정부’의 등장과 도시/장소 마케팅의 일반화가 창의 담론의 확산을 추동하는 시대적 변화의 모습이다.

 

이제 창의, 혁신은 시대적 화두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창조환경, 창조도시를 육성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도시정부의 핵심과제로 등장했다. 그에 따라 DMC 같은 실험적인 창조환경이 도시개발사업, 부동산개발사업의 형태로 탄생했다.

 

이제 중심과제는 이렇게 계획적으로 조성된 창조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미 조성된 창조환경에 대해서는 당초의 취지가 유지되도록 장치를 보완하고,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장치를 계획에 포함시켜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인공적으로 조성한 창조환경이 계속해서 창의적인 장소로 남아 있을 것인가, 그것이 과제다.

 

지속가능성은 변화와 유지라는 두 상반된 힘의 조화속에서 이뤄진다고 본다. 변화는 삶의 본질이며 창의의 존재방식이다. 변화가 없으면 죽은 것이다. 그러나 변화만 있고 유지되는 중심이 없으면 변화는 축적되지 못하는 무의미한 일회적 현상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마냥 유지되는 것은 관성이다. 변화 없는 관성은 죽은 것이다. 지속가능한 창의는 변화와 유지 둘을 모두 필요로 한다. 지속가능성의 또 다른 표현은 ‘온고지신’이다. 어떻게 창조환경의 계획적 조성과정에 온고지신을 심을 것인가가 핵심과제다.

 

계획적으로 조성하는 창조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첫 출발점이 중요하다. 적당하게 단단하고 복잡해서 시간이 흐른다고 쉽게 백지로 돌리거나 바꿔버릴 수 없으면서도 너무 단단하고 복잡하지는 않아서 상황변화에 대응해 얼마든지 고치고 개선할 수 있는 구조와 형태를 갖춘, 다시 말해 공고함과 확고함, 그리고 유연함과 탄력성을 동시에 지닌, 초기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물리적인 환경, 사회적인 조건, 모두 거기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비유로 이야기하자면 일체화된 거대한 구조물은 쉽게 고치기 어렵다. 참고 쓰다가 통째로 재개발하든지 아니면 다른 데로 이사를 가든지 하는 방법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적응 못해 멸망한 것은 덩치 큰 맘모스였다.

 

둘째로 창의와 혁신의 진짜 주역인 입주기업과 전문가들이 공공사업의 객체가 아니라 창조환경의 주체로서 자신의 요구와 필요에 맞서 장소의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용인돼야 한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창의에 열성적인 시정부의 계획가나 개발업자라 할지라도 당사자들보다 상황을 더 잘 알고 변화에 민감하기는 어렵다. 창조환경의 지속가능성은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거버넌스에 의해 담보된다. 자기완결적인 사업계획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공동노력에 의해 유지되고 바뀌는 속에서 창조환경은 진화되고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셋째 정부는 창조환경의 창조자가 아니라 그 형성을 돕고 지원하는 ‘양치기’ 역할을 해야 한다. 막강한 행정력으로 일방통행식 사업을 펼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오래 가는 창조환경을 만들 수 없다 취약한 중소기업과 자영 사업자들을 대기업의 독과점으로부터 보호하고 새로운 창업을 지원하며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보살피는 역할이야 말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말하자면 밭을 만들어 종자를 심고 나서는 적절할 때 물과 비료를 주고 잡초를 고르고 해충을 막는 역할이 요구된다.

 

창의와 창조계층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그 요람으로 창조환경과 창조도시는 매우 요긴하다. 이를 계획적으로 조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추상적인 개념이나 범주를 마치 현존하는 독립된 실체인 것처럼 치부하는 물화의 오류(refication)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창의와 창의계층, 창조환경과 창조도시가 평범한 인간의 삶과 삶의 현장과 동떨어진, 매우 특별하고 이질적인 범주라고 생각한다면 지속가능한 창조환경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창조담론에 주목하되 전체의 맥락에서 접근하는, 거시적이며 균형 잡힌 시각이 요구된다. 그래야 비로소 지속가능성을 지닌 창조환경을 계획적으로 조성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창조환경을 만드는 일은 살기 좋고 일하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과 별종의 일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일이다.

김경태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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