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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쉼터, 습지를 찾아서
보려는 게 달라도 습지에 가면 다 보여
습지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 발견


▲ 이나무 대중인식증진·교육담당 (UNDP/GEF 국가습지보전사업관리단)

내게 2008년 창원에서 개최된 람사르 총회가 좋았던 첫번째 이유는, 일반인들에게 습지라는 단어가 좀 더 친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습지를 알리고 교육하는 사람입장에서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습지는 물이 있는 땅이다. 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안다면 그 물이 고여 있거나 흐르는 습지가 생태계와 인간생활에 중요하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지하수를 보급하고 홍수를 조절하며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것 등 일련의 습지가치를 줄줄이 열거하면서 습지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교과서처럼 따질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도시에 사는 내게 습지는 이렇다. 내 밥상에 놓이는 밥과 어패류를 생산하는 곳, 그리고 피곤해 지친 내가 주말에 찾아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지난 주말에는 제주도 출장을 간 김에 습지를 잠깐 둘러봤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일요일 이른 아침 북적대는 국밥집에서 배를 채우고 새를 보러 나섰다. 습지를 보는 것이 반드시 조류탐조라고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습지의 깃대종인 물새를 찾아나서는 것은 어쨌든 나를 습지로 이끄는 시발이다.

어떤 이는 새를 보면서 인생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감동하고 생명체의 다양한 행태에 매혹되겠지. 그런 느낌들도 좋지만 나는 사실 마음이 편해져서 좋다. 각자가 어떤 존재 혹은 사물로 인해 이유 없이 편한 마음을 품듯 나 또한 그냥 좋은 것이다.

비바람 치는 까만 돌 사이에 무언가 시꺼먼 움직임이 포착돼 가만히 들여다보니 제주도에서만 흔히 볼 수 있다는 흑로다! 파도가 넘실대는 연안에서 무언가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는 것을 찬찬이 살펴보면 수 마리의 아비가 보이기도 한다.

자주 보았던 가마우지 머리가 이상하다 싶어서 알아보니 번식 깃이 생겼단다. 부인이 좋으면 사위가 장모댁 장독대를 향해서라도 절을 한다고 했던가.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습지는 새들이 서식하고 생활 활동을 하는 장소이다. 탐조가들이 습지보전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도 사위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가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도롱뇽이 낳은 알도 보이고 개구리 알도 보인다. 무심코 걷다가 어느새 꽃봉오리가 맺힌 난초과 식물을 밟을 뻔 한 적도 많다. 습지에서 뭘 배우려고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이 편한 곳을 찾다보니 습지에 다다르게 되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탐조를 위해 종종 습지를 찾아가는 것이 시작이기는 했지만 아이들과 갯벌체험을 하러가거나 조용히 사색에 잠겨 걷고 싶을 때, 그리고 친구랑 훌쩍 낭만을 찾아 갈대숲 바람소리를 듣고 싶을 때도 습지를 찾는다.

일상다반사에 쫓겨서 제주도 습지, 천백고지, 동백동산 그리고 하도리에 다다르게 되었던 주말. 내가 본 것은 동식물들이었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평상심이었다. 늘 머물고 싶게 만들었던 그 곳이 좋았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난다. 그리고는 마음의 안식처를 찾곤 한다. 언제일는지 모르지만 한번쯤은 떠난 곳을 다시 찾을 수도 있고 영영 기억에서 멀어져 잊힐 수도 있다.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 있어 습지는 ‘관심’을 넘어 ‘애호’다. 카메라 필름에 판을 박듯 보기만 해도 내 눈 속에서 비친 습지의 영상들을 내 가슴 속에 아로새기곤 한다. 그리고는 내 마음이 휴식을 부르는 순간, 새겨진 그 영상들을 고이 꺼내어 그곳을 향해 떠나는 것이다.

내가 그곳을 찾는다기 보다는 그곳이 나를 부르고 내 영혼이 원하기 때문이다. 습지 속 태고의 신비와 견줄 만큼 크고 작은 동식물들이 찌든 내 삶을 정화시켜 준다. 그들은 나에게 벗이 돼 주고 공기청정제처럼 맑은 향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준다.

문득 떠나고 싶은 어느 날 근교의 습지를 찾아 떠나보기를 권한다. 다행스럽게도 곳곳에 크고 작은 습지들이 산재해 있으니 어느 한군데라도 도달할 것이다. 생태계 다양성의 보고, 습지가 당신에게 남겨줄 선물을 분명 가슴 속에 품고 올 것임을 약속한다.

잿빛 우울함과 갑갑한 일상의 해방구를 찾는다면 떠나라. 매너리즘에 빠진 반복적인 로봇 인생이다 싶으면 분명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보고 싶은 것이 다를지라도 습지에 가면 다 보일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장이 아님을 느끼게 되길 바란다.

한종수  jepoo@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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