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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간판문화운동을 향하여
자본주의 풍요·욕망의 메커니즘 보여
공동체 존재 증명·도시 경관요소 돼야


[#사진1]지난달 민간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희망제작소의 부설기구인 간판문화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간판문화연구소, 말 그대로 간판문화를 연구하는 곳이다. 그러면 왜 간판문화이며, 간판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간판 현실에 대해 개탄한다. 심지어는 간판 문제를 해결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간판은 좀 심하다.

이건 사람 사는 도시가 아니라 완전히 간판 붙이기 위해 만들어놓은 도시 같다. 누군가는 간판이 건축의 마감재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시인은 간판을 보지 못하는 날이 죽는 날일 것이라고까지 읊어댈 정도니….

간판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장사하는 집에서 상호나 영업 내용 등을 써서 건물 바깥에 붙이는 알림판이다. 일종의 광고인 셈이다. 그래서 간판을 옥외광고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간판을 단순히 광고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도시의 경관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시각적 요소라는 점 때문이다. 이 점이 방송이나 신문광고와 같은 매체광고와 옥외광고인 간판의 차이이기도 하다. 예컨대 방송이나 신문광고는 보기 싫으면 안 볼 수 있지만 옥외광고는 집 밖에 나오는 한 안 볼 도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매체광고보다 옥외광고가 훨씬 더 일방적이고 강제적이다.

흔히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광고처럼 자본주의의 풍요와 욕망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고은 시인이 “평양이 구호의 도시라면 서울은 광고의 도시”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에서 간판이라는 이름의 광고, 이건 뭐 꽃이 아니라 아주 몽둥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마구 후려치는 시각과 언어폭력의 몽둥이. 그래서 간판을 자본주의의 몽둥이, 그걸 굳이 꽃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천민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러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간판처럼 공동체의 부재, 자율의 실패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거기에 보이지 않는 손이란 없다. 공동체도 없고 자율도 없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개개인의 적나라한 욕망과 방종뿐. 공동체가 붕괴된 상태에서 개개인이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우리 사회의 간판은 잘 보여주고 있다.

간판을 간판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간판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모순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판은 공동체이며 도시이며 문화이며 미학이다. 도시와 관련된 문제치고 복잡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지만 간판 문제는 특히 복합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판이 공동체의 존재를 증명하고 도시의 바람직한 경관 요소가 되고 문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판문화연구소는 우리 사회의 간판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간판문화연구소는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출발한다. 하나는 ‘간판은 문화다’라는 것이고, 간판의 주인은 간판주나 간판제작자가 아니라 바로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 즉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간판문화연구소는 문화운동이자 시민운동을 추구한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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