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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환경이 목적인 도로
도로건설 사업 적격성·사업성 심사 강화[#사진1]

공급 중심 도로투자 이용자 중심으로 전환

연둣빛 신록으로 온 국토가 싱싱하고 아름답다. 사통팔달 뚫려 있는 고속도로를 타고 최근 종영된 드라마 ‘봄의 왈츠’의 배경이 된 완도에 다녀왔다. 7×9축의 남북 제2축인 광주~완도 간 고속도로 기본설계 노선선정 자문을 위한 현장조사 덕분이다. 서울에서 땅 끝 마을 해남, 완도까지 일일 생활권임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올해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33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30여 년간 도로는 국가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중요한 국가기반시설임에 틀림없다.
시대가 변하면 패러다임도 변화하는 법이다. 도로정책은 지난 1950년대부터 전국 교통망과 물류망을 정비하기 위한 양적 확충에 초점이 맞춰졌다. ‘더 빨리 더 많이’라는 도로건설 패러다임 덕분에 2005년 말 현재 도로 총연장은 1970년에 비해 2.5배(도로율 1.45) 증가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도로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이용자의 편익·안전·환경 등을 중시하는 질적 요인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도로’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도로’의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경제 중심보다는 국토균형발전, 환경보전 등 지속가능한 발전과의 연계가 강조되고 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터널과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사례에서 경험했듯이 도로건설에 따른 환경오염문제, 자연환경 훼손문제, 지역공동체 단절 문제, 경제력 우위도시로 상권 등이 빨려 들어가 지역경제가 쇠퇴하는 빨대효과까지 다양한 형태의 부정적 효과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최근 도로의 중복투자와 고규격화, 민자도로 건설 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국회와 시민단체에서는 고속국도와 국도 10개 구간 406.1㎞가 중복 투자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424개 구간에서 고속도로 38개 구간, 국도 258개 구간이 신설·확장되고 있어 그야말로 전 국토가 도로공사 판이다.
이렇게 도로사업 투자의 중복과 과투자가 문제되는 이유는 국가교통체계에 대한 종합 조정기능이 미흡하고 민원성·선심성 공약 등 정치권의 요구와 정치적 배려에 의해 추진되는 도로 사업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도로법 등 7개 법률에 의해 7개 이상의 도로 사업추진 주체가 중앙·지방조직에 분산돼 각각 독자적으로 칸막이를 형성해 도로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계획과정에서 부처 간 상호 협의 및 조정 없이 ‘묻지 마 투자’기 이뤄지는 꼴이다. 자치단체별로는 투자우선순위, 노선선정, 사업시기 등에 있어서 이해상충으로 연결도로사업 추진에 애로가 발생한다.
이처럼 전국적인 차원의 종합·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한 지역에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등 여러 노선이 중복 건설돼 과투자 논란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로사업 투자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사업타당성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하고 투자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계획 수립 후 장기간 착공이 지연된 사업이나 대규모 개발계획 등 수요예측에 중대한 변화가 있는 사업 등은 타당성 재검증을 의무화하는 등 도로건설 대상사업의 적격성 및 사업성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적격성과 사업성 심사 시 경제성과 함께 환경성과 사회적 통합성, 국토균형발전 등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집중도가 지나치게 높으므로 비수도권지역 도로이용의 질을 일정 수준으로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도 중요하다. 따라서 경제성 중심의 BC 분석을 확장BC 분석(extended BC analysis)으로 개선하는 다판단 기준법도 도입해야 한다.
정치권의 무분별한 도로건설 요구도 도로건설 과투자, 중복 투자의 중요한 요인이다. 각종 공약사업으로 ‘정치도로’ ‘정치역’ 등이 전국에 산재하고 있다. 이들 도로는 사업의 타당성이 낮고 절차적 합리성도 결여돼 있다. 교통시설의 빨대효과 등에 대해 정치인들의 관심과 공부가 필요하다. ‘도로건설=지역경제 활성화’는 이제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 건설 후 대전에는 쇼핑객이 몰리고, 진주에는 대전 관광객들이 몰려 횟값만 높여놓고, 버리고 간 쓰레기만 쌓인다는 진주 주민의 볼멘소리에 주목해볼 만하다. 따라서 도로를 개설하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인지 경쟁력과 매력도를 우선 파악하고 도로건설을 유치해야 할 때다. ‘선 지역경쟁력 후 도로건설 요청’의 필요성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공급자 중심의 도로투자를 이용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도로 이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접속이 허용되지 않아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는 구간이 너무 많다. 영동고속도로 동군포IC 신갈에서 인천 방향은 접속할 수 있지만 인천에서 신갈 방면은 접속할 수 없다. 판교JCT의 경우 서울방향과 청계톨게이트 방향이 접속되지 않는다. 동일한 재원으로 보다 나은 도로시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신규투자보다는 이용자 중심으로 도로시설의 운영효율성을 증진해 도로의 안전성과 편리성을 제고해야 한다.
‘도로가 충분한가’ ‘도로 중심의 교통체계를 철도중심의 교통체계로 전환해야 하는가’ 하는 논의가 각계각층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바로 이때가 도로 중복과 과잉투자 방지를 위한 지속가능한 교통정책의 공론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교통종합계획·관리체계를 확립하고 도로·철도·항만교통의 조화와 지속가능한 이동성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도로건설 사업에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하고 지역과 주민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사업자 중심의 도로계획 및 운영체계에서 탈피해 이용자 중심의 패턴으로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과 인간을 배려한 좋은 도로 만들기에 정부와 국민 모두가 관심을 기울일 때다. 도로율 3.1인 영국에서는 최근 고규격, 초고속 직선도로 건설보다는 다소 늦지만 안전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곡선도로 건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콘크리트로 직강화된 하천을 구불구불 자연형 하천으로 전환하던 1990년대의 하천정책과 같이 도로정책에서도 ‘인간과 환경차원의 좋은 도로 만들기’를 위한 발상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박순주  psj29@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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