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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후변화 시대 섬진강 홍수대책을 생각한다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삼희 선임연구위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삼희 선임연구위원

[환경일보] 2020년 장마는 중부지방 기준으로 역대 최장 기록인 54일이었다(기상청 자료). 그런데 38일로 짧았던 남부지방의 섬진강에서 집중호우(남원에서 24시간 지속시간 500년 빈도에 상당)로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댐 방류량이 겹쳐 홍수 재해가 더 유별났다.

만일 재해 발생 시점이 신속한 대피가 어려운 한밤이고 대조(大潮)와 겹쳤다면 어찌됐을까?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른 유역의 큰 하천들보다 근본적으로 홍수 재해에 취약한 지형‧지질 조건을 갖춘 섬진강에서 인명피해가 거의 없었던 게 기적에 가깝다.

섬진강 하천관리 기준인 하천설계빈도 100년을 초과한 강물이 차오르면서 여기저기 제방이 무너졌다. 이로써 저지대 주택가, 수확을 앞둔 경작지, 축사 등이 토사와 함께 드세게 들이닥친 흙탕물로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한편 강바닥에는 1m 정도 거석도 내리뒹굴고 콘크리트로 된 강변 산책로가 휴지 조각처럼 찢겨져 강물 속으로 휩쓸려갔다.

곡성‧남원 분지 내 극히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강바닥에는 토사가 퇴적됐을 것이라는 일반적 추정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깎였다. 매우 빠른 흐름에서 발생하는 양력 탓으로 토사가 빠져나오는 현상인 토사흡출(土砂吸出)로 붕괴된 호안(護岸) 구조물도 목격됐다. 강변 주민은 지류(支流)로 역류가 확 밀려드는 현상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일반 하천의 통상적인 홍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들이다. 대홍수 시 볼 수 있는 섬진강만의 독특한 홍수 흐름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곳은 시생대 편마암과 중생대 화강암 등 전반적으로 단단한 암반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홍수 흐름의 세기를 줄이는 모래톱의 근원인 토사 공급량이 적다. 또한 강 형태가 하류로 내려갈수록 하천에 홍수터가 형성되는 일반 하천과 달리 하구까지 대부분 V자형 계곡의 모습을 띤다. 소백산맥, 노령산맥, 호남정맥 사이에 형성된 남원과 곡성의 분지 내 짧은 일부 구간에서는 하천경사가 완만한 곳은 있다. 하지만, 이곳을 포함해 섬진강댐에서 밀물의 영향이 미치는 곳까지 평균 1/750 정도로 아주 급하다. 이는 동해안의 계곡 하천을 연상시킨다.

즉 섬진강에 큰 홍수가 발생하면 홍수 흐름 에너지를 줄이는 지형 요소가 그다지 없다. 그만큼 물살이 세고, 구례나 화개장터처럼 계곡 내에 위치한 지류의 물은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돼 물이 금세 차오른다. 이때 밀물 영향권 내 지류를 만나는 곳에서는 대조 때와 겹치면 최악의 수위 상황이 전개된다. 그나마 과거에는 남원과 곡성 분지의 섬진강 수변에 존재했던 여러 홍수 범람터 덕분에 이런 홍수량을 상당히 조절할 수가 있었다. 남원 금지면의 옛 섬마을(河島里) 주변이 그 대표적이다. 놀제(지류를 통해 홍수량을 조절하던 지류 합류부에 설치하는 제방으로 우포늪의 토평천 등 과거 국내에 다수 산재했음) 흔적이 남아 있는 구 곡성역 주변도 같은 유형이다. 낙동강 창녕의 우포늪과 용호늪과 같이 자연적인 홍수조절지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한편 1960년대 실시했던 ‘논경지 정지(整地)’ 때 물길을 변경해 하천을 정비한 게 이번 홍수해를 더 키운 측면도 있다. 오곡천, 중산천, 수지천 등과 같은 지류 하류부는 대홍수 때 오히려 본류 홍수를 끌어들이는 모양새로 제방을 축조한 때가 이 즈음이다. 이번 최대 피해 지역인 남원 금지면의 제방 붕괴 장소도 논경지 정지 이전에는 지류가 합류하던 곳이었다. 이렇게 물길 변경을 통해서라도 더 많은 농지 확보가 필요했던 시대적 요구가 더 절실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지형적으로 홍수 재해에 불리한 섬진강에서는 저수지와 저류지 확대 등의 유역 대책도 물론 필요하다. 또한 홍수범람의 기폭제가 됐던 (구)금곡교와 (구)남척교를 철거하고 하천 설계빈도를 높여 제방을 증축과 보강하는 하도 대책 역시 유효하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홍수해 정황상으로 볼 때 댐 방류량을 더 정교하게 조절하는 것도 요구된다. 하지만 섬진강에서는 이것들만으로는 충분한 홍수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점차 심화되는 기후변화에 따른 강우와 유출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네덜란드, 일본 등 선진 외국의 사례처럼 새로운 개념의 제방 정책을 도입하는 게 현실적이다.

제방 폭을 크게 넓히는 슈퍼 제방과는 개념이 다소 다른 아머(armour) 제방이다. 제방 위로 물이 넘치더라도 무너지지 않게 갑옷을 덮어씌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방을 더 높인 상태에서 제방 붕괴 상황이 오면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제방을 추가로 높일 수 없는 선진국의 도시 상황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년 섬진강에서 경험한 것처럼 홍수가 넘쳐나 제방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물이 차오르더라도 제방이 전혀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제방으로 개조한 후 설계초과 홍수의 일부만을 한시적으로 넘긴 후 홍수 하강기에 고인 물을 신속히 빼내면 된다. 이때 실제 제방 넘어 넘치는 시간과 양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피해 정도가 제방 붕괴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이를 위해서는 섬진강에 적합한 독자적인 하천설계기준을 마련한 후 다음과 같은 지역단위 맞춤식 현장 대응형 홍수대책을 입체적으로 함께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선 과거 농경지 정지 때 설정한 하천 선형이 현시점에서 대형 홍수를 제어하는 데 부적절한 지류 하류부을 개량하는 근본 방안에 대해서도 되돌아봐야 한다.

유로 복원이 현실적으로 복잡한 문제라면, 지류 하구에 역류 제어용 배수장(排水場) 설치, 홍수 흐름의 세기를 조절하는 수변의 개방형 홍수조절지(개활형 습지), 하천설계 초과홍수를 유하시킬 곡성 들판 내 방수로(洪水 放水路) 축조, 올여름 붕괴됐지만 피해가 적었던 낙동강 장천제에서 입증된 본류제방 붕괴 대비용 보조제방(二線堤) 축조(기존의 농로를 개량해 활용하거나 잔존하는 자연제방을 할 수 있음), 제방 바깥쪽(제내지)에 수방림(水防林) 조성, 기능을 다한 산붙인제 철거 등 여러 창의적 방안과 적극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흐름이 빠른 섬진강에서는 일방적인 강바닥 내 암반 제거와 일률적인 강바닥 준설은 오히려 홍수 흐름 에너지를 증가시켜 하류부에 오히려 큰 홍수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더욱이 섬진강에서는 하천구역을 용도 변경하는 일에 대해서는 유난히 엄격해야 할 것이다.

생명과 재산을 크게 위협하는 기후변화 시대에 초래할 대형 홍수를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 하천 고유 특성을 감안한 창의적인 홍수대책이 필요하다. 섬진강에서 치른 뼈아픈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편집국  pres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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