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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라보게 하는 산, 카메라로 그리다임채욱 사진작가 "한지에 담은 산의 숨결, 깊은 위로 전해"

“산에 올라서야 비로소 내면과 마주할 수 있었다”
기다림, 스스로 내보이며 말을 걸어오는 산···
교감, 무한한 존재와 일체가 되는 찰나를 담다

사진작가 임채욱은 산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

[서울=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산은 우리에게 큰 가치를 제공한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쾌한 기운과 싱그러운 냄새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저만치 날려버린다. 고단한 산행 길에선 포기와 인내 사이를 갈등하면서도, 정상에서 마주한 비경은 지친 몸과 마음을 일깨운다.

이러한 까닭에 많은 이들이 산을 찾아 나선다. 사진작가 임채욱도 그중 한 명이다. 그에게 산은 어린 시절에는 놀이터였고, 대학 시절에는 그림의 소재였으며, 사회 시절에는 인생의 고비를 함께 넘는 동반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삶의 에너지다.

“산은 삶의 원동력”

Blue Mountains 2012 107x16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임채욱은 살면서 가장 어려운 시절 산을 찾았다. 벤처사업가에서 작가로 돌아왔을 때도, 작업세계의 변화를 꾀할 때도 그는 산에 있었다. 험악한 산길을 올라가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위안과 평화가 밀려왔다. 그는 “산에 올라서야 비로소 내면과 마주할 수 있었다”며 “산의 기운은 새롭게 삶을 바라보고,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풍광 앞에서 조용히 사색하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대개 산악 사진에서는 산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강조하기 마련인데, 임채욱은 풍경만 소박하게 담았다. 산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그는 “비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올라 산이 스스로를 내보이며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교감하는 순간에, 무한한 존재와 일체가 되는 찰나에 그는 셔터를 누른다.

내면을 들여다보다

Blue Mountains 2020 160x10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그는 수많은 산을 오르내리며 문득 “산의 기운이 한국인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민족적 정서의 뿌리가 산으로부터 시작됐고, 한민족의 핏줄이 산의 봉우리와 능선의 굽이굽이마다 뜨겁게 흐르고 있다”고 느꼈다.

흔히 한국의 도시와 촌락은 산을 배경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는 자연의 품속에 조성돼왔다. 건물 사이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도심을 유유히 지나가는 능선은 참으로 미묘한 조화를 자랑한다. 이처럼 산은 우리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

Blue Mountains 2008 107x16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하지만 산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다. 임채욱은 한국화의 전통과 정신을 살리면서 현대라는 이 시대를 어떻게 담아낼까 고심하다 한지를 주목했다. 산을 둘러싼 구름이나 눈의 결을 한지가 가진 닥의 결이 표현해주길 바랐다.

곧바로 한지를 찾아 나섰지만, 국내에는 회화나 사진 작품을 인쇄할 용도로 개발된 한지가 없었다. 그는 한지 업체를 직접 찾아 인쇄용 한지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마침 그 업체에 자체 연구소가 있었고, 정부 연구지원 프로젝트로 선정되면서 한지 연구에 돌입했다. 마침내 보푸라기가 없고 발색이 좋은 두루마리형의 인화용 한지를 개발했다.

카메라로 그린 산수화

Seorak 3D

임채욱은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용 인화지가 아닌 우리 전통 한지로 뽑아낸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먹의 번짐 같은 효과, 생생한 농담의 변화가 동양화를 꼭 닮아 있다.

설산사진을 마주했을 땐 “어쩜 이토록 세심하게 그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눈 덮인 계곡의 소나무들은 틀림없이 붓으로 그린 거였다. “전부 사진”이라는 그의 대답에 두 눈을 의심했다. 그가 사진작가라는 사실도 잊은 채 카메라로 그린 산수화에 넋을 잃고 말았다.

살아 숨 쉬는 풍경

Blue Mountains 2007 50x15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임채욱의 사진에는 모든 풍경이 살아 숨 쉰다. 겹물결을 이루며 굽이치는 산맥과 온갖 잡초로 덤불진 능선, 강직한 바위는 한지 위로 한올 한올 되살아난다. 눈과 구름, 안개로 가득한 여백에서는 한지의 결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는 여전히 세밀한 관찰과 천착을 거듭하며 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올해는 산봉우리의 산세가 겹겹이 이어지는 덕유산의 아름다움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가 조망한 블루마운틴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어올지 벌써 기대된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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