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특집 특별기획
일상의 이미지를 기록하다, 권태섭 작가[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㉜] 권태섭 작가
강변에 별 60x45cm 한지, 아크릴 2019
권태섭 작가는 기억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이미지들을 기워놓은 작업을 펼치고 있다.

[환경일보] 나의 작업은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형색과 제작방법 등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내용 면에서는 일관되게 특정한 대상을 이용해 나의 심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해왔다.

그림에 등장하는 새, 물고기, 나뭇잎 등은 작품이 제작될 당시의 나의 모습들이다. 최근 작업에서 등장하는 형상은 별이다. 별은 나를 비롯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희망을 상징한다.

그림마다 별의 형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또 별마다 고유한 색을 가지고 있다. 그림에서의 형태와 색의 변화는 개개인의 고유한 개성과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화면 정 중앙에는 잘 보이지 않는 형상들이 있다. 달항아리와 별······. 달항아리는 꿈을 담기 위한, 별은 별들을 위한 이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나는 어떠한 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삶의 이상적인 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오늘도 큰 별 하나를 생각하며 작은 별과 나를 만들어 본다. <작가노트 중에서>

평행선 45x54.5cm 한지, 아크릴 2019

권태섭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가 일상의 이미지를 추격하고 있는 포수(砲手)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화가들을 ‘일상의 언어를 쫓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듣기에 따라 그럴듯하지만, 또 그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통적으로 화가들을 이미지 생산자로 취급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란 지각 심리학의 오랜 가설처럼 이미지를 실재와 동일시하는 습관이 있다. 지각(知覺)은 우리의 환경 속에서 자극의 형태를 조직하고 설명하는 과정이자 사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감각정보를 해석하려는 노력이다. 지각하려는 사물이란 감각 자료에 의해 제시된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지각과정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는 그것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구현되었는가를 떠나 하나의 가짜, 즉 3차원적 세계가 이차원적 망막에 투영된 ‘거울 속의 영상’에 불과하다.

여름에 향연 174x140cm 한지, 아크릴 2019

여기서 우리는 ‘이미지’라는 막연하고 불투명한 언어의 의미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으로 이미지는 상(像), 영상(映像)을 가리키며, 심리학적으로는 심상(心象), 즉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구체적, 감각적으로 마음속에 재생되는 상(像)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건 불어권에서 이미지(Image)란 단어는 철자의 위치만 바꿔버리면 마술(magie)이 된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이미지의 어원도 라틴어로 유령을 가리키는 이마고(imago) 아니던가. 이미지의 마력이란 단순히 시청각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신라의 선덕여왕이 공주였을 때, 당나라에서 선물한 꽃 그림을 보고 “이 꽃에는 향기가 없다”고 말한 것은 이미지를 해석하고, 그것을 현실과 연결해 유추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당나라 화가가 잊어버리고 그리지 않았든지 아니면 그 꽃이 실제로 향기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이 설화는 이미지의 마술적 힘에 대해 환기해준다. 이미지는 그것이 아무리 가짜라 하더라도 실재를 대체한다.

섬,바다,별 203.5x122.5cm 한지, 아크릴 2019

인류가 만들어놓은 모든 우상은 바로 실재 혹은 실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영험한 것에 대한 대체물이다. 이것은 부재(不在)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책략이었으며 초월, 보호, 찬양, 밑음을 위해 존재했다. 재현의 시대에 이미지는 사물과 세계의 인지를 위해 생산됐다. 그 예를 르네상스 이후 회화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각 이미지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탈산업사회에서 이미지는 인간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자신호 때문에 가공된 ‘가상현실’(virtual reality)로 생산, 복제, 유통, 확대 재생산된다. 비디오와 컴퓨터 등 시청각에 호소하는 전자 기술공학의 전달 매체가 발달한 요즘, 이미지는 대부분 가상적이다.

말하자면 전자공학에 따라 포착된 이미지는 가공된 것이거나 포착된 정보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보이는 불연속적 환영의 집적이자 병렬이며 단지 그것이 연속적인 그것으로 보이도록 우리는 반응할 따름이다.

별580-61.2 75x67cm 한지, 아크릴 2019

이미지 가공의 시대에 수공적 공정에 충실하며 과거의 영상을 뒤쫓는다는 것은 진보의 계율로 볼 때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권태섭이 자신의 작업을 펼쳐 보이며, 이것은 자신의 생활일기라고 말했을 때, 그 문학적 수사의 설득력보다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자 하는 한 인간의 작고 소박한 기대수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권태섭이 만들어내고 있는 작고 앙증스러우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 즉 그것의 이미지를 재생하려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뒤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실존적, 소서사적, 전통 지향적 그림의 심각성은 청년세대가 흔히 가질 수 있는 과잉의욕의 결과였다고 한다면, 이번 그림들은 지나치게 주변적이다. 그것도 개인사를 총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내용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취약한 자기 고백에 머물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든다.

그러나 이미지중독의 시대에 그가 그려내고 있는 작은 담록의 소박성 때문에 오히려 그의 그림은 재미있고 발랄하며 특이하다. 비록 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주변적이고 과거지향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는 그만의 사색과 고민, 갈등과 환희의 기억이 담겨있다.

별을모아 92.5x62cm 한지, 아크릴 2019

권태섭은 실재의 그림자를 통해 개인적, 일상적 체험을 추적하고 있으며, 그것을 이미지로 기록하고 있다. 나비와 꽃, 기와가 있는 집, 가뭄과 홍수의 기억, 혹은 연인에 대한 기억 등은 일상적 경험에 빗댄 자기 언어 찾기이다. 마치 물속에 풀어헤쳐진 물감처럼 투명하다는 점에서 일단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의 작은 그림은 서로 독립해 있으면서 어떤 줄기가 있다. 이를 연결하다 보면 서술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미지를 단지 유령의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서가 아니라, 존재와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비록 그것이 현실의 단편들을 기워놓은 마술의 거울과 같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이 이미지야말로 자기를 드러낼 방법이자 위원인 듯하다.

이런 점에서 권태섭은 이미지의 포수라 할 수 있겠다. 그가 포획해야 할 대상은 항상 그의 주변에 있으면서도 실체가 불분명한 영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는 일상으로부터 그가 표현해야 할 이미지를 찾아 나서는 이 작업을 자기 확인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의별 122x63cm 한지, 아크릴 2019

이 바스러지기 쉬운 기억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이미지들은 권태섭의 손에 의해, 수간 채색의 방법에 따라 화면 속에 견고하게 조작된다. 그리하여 그의 손을 떠난 작품은 비로소 독립된 존재로 자기 영역을 구축한다. 사물의 그림자 위로 드리워진 그의 일상을 기억들은 역설적으로 부재에 대한 저항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된 그 작은 세계 속에서 그의 이미지들은 각자에게 부여된 의미를 품은 채 우리 앞에 노출된다, 그가 만들어낸 화면이라는 이 가상의 공간은 이미지가 거주하는 집이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채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포토뉴스
[포토] 대한건설보건학회 후기 학술대회
[포토] 한국물환경학회-대한상하수도학회 공동학술발표회 개최
[포토]최병암 산림청 차장, 생활밀착형 숲 조성사업 준공식 참석
[포토] ‘제22회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 시상식 개최
수원에서 첫 얼음 관측
여백
여백
여백
오피니언&피플
제9대 임익상 국회예산정책처장 임명제9대 임익상 국회예산정책처장 임명
김만흠 국회입법조사처장 취임김만흠 국회입법조사처장 취임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