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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에 갇힌 도시의 소리, 김영구의 회화[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㉗] 김영구 작가
도시-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The city-Pensive Bodhisattva) 259.0x181.8cm Acrylic on canvas 2019
김영구 작가는 프레임을 의식하고 강조하며 현실과 유사현실의 관계, 나아가 회화의 본질을 묻는다.

[환경일보] 도시는 다양한 문화적 코드가 내재해 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네트워크에서 넘쳐나는 기호와 각종 메시지로 복잡하고, 거대하며, 끊임없이 자가증식(自家增殖)하는 불완전하고도 역동적인 존재다.

다양성과 변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도시의 첨단 빌딩들은 수평과 수직의 직선으로 이뤄져 마치 질서를 부여하는 듯이 명확해 보인다.

문화, 정치, 경제의 중심에서 지난(至難)한 역사를 마주하면서도 첨단도시로의 위상을 잃지 않고 발전해 가는 ‘서울’은 작가에게 존재의 장(場)인 동시에, 성찰의 대상이면서 지속해서 영감을 제공하는 모티브가 되고 있다. <작가노트 중에서>

보이는 도시, 보는 도시(City seen, city seeing)

도시2019-보는 날다(The city2019-seeing fly) 162.7x116.0cm Acrylic on canvas 2019

전통적으로 회화는 일종의 유사현실을 만들어내는 일을 의미했다. 벽 위에 가상의 창을 만들어 공간을 확장하고 현실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유사현실을 매개로 현실을 연장하고 확장하는 것인데, 그림이 붙박이로 존재하던 시절에 유사현실은 벽 위에 그려졌었고, 이후 그 역할을 이젤 페인팅 곧 평면의 캔버스가 떠맡게 된다. 여기서 중요하고 결정적인 건 창이며, 이런 창에 해당하는 것이 캔버스고 프레임이다. 따라서 회화란 가상의 창을 만들고 프레임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현실에 흡사한 유사현실을 재현하고 제안하는 일이다.

이렇게 재현·제안된 유사현실은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유사현실이 현실을 닮았기 때문에 친근하고, 그 매개역할을 하는 가상의 창(프레임)이 현실을 확장하면서 단절시키기 때문에 낯설다. 유사현실을 매개로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을 낯설게 하는 것. 결국 재현적 회화란 그저 그림의 감각적 표면 현상에 머물기보다는, 가상의 창이자 프레임을 매개로 현실과 유사현실의 관계를 묻는, 자기 반성적이고 자기 논평적인 일종의 메타회화(회화의 본질을 묻는 회화)를 수행한다. 이 수행을 자기 속에 포함하는 경우로 보면 되겠다. 화가 김영구의 회화는 이런 메타회화를 수행하는 일면이 있고, 그 수행을 엿보게 해주는 적절한 사례가 되어주고 있다.

도시-오후4시30분(The city-PM4.30) 116.7x91.0cm Acrylic on canvas 2019

김영구는 프레임을 그린다. 보통은 캔버스 자체가 일종의 가상적인 창이자 프레임이다. 따라서 굳이 프레임을 강조할 일도 없고 필요도 없다. 암묵적으로 합의된 전제며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이런 암묵적인 사실 뒤로 그림이 다름 아닌 가상의 창이며 프레임이라는 사실이 묻힌다. 작가는 이렇게 묻히고 잊히는 사실을 그리고 싶고 드러낸다. 또 그림이 일종의 가상적인 환영을 만들어내는 일임을 강조한다. 이로써 다른 재현적 회화가 간과하고 있는 지점을 건드리고, 다른 재현적 회화들이 미처 가닿지 못한 지평을 열어놓고자 한다.

다시 말해 캔버스 자체가 이미 프레임임을 인정하면, 그림 속에 굳이 프레임을 그려 넣는 작가의 행위는 프레임에 프레임을 그려 넣는, 일종의 이중프레임이자 이중그림이며 액자그림(소설 속에 소설이, 서사 속에 서사가 중첩되고 포개지는 액자소설에 비교될 만한)을 수행한다. 따라서 그림으로 재현된 현실과 그림을 가능케 한 구조적 조건인 프레임의 관계를 묻는 일이다. ‘하나의 그림이란 그림인가 아니면 개념인가’를 묻는 르네 마그리트의 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마그리트가 ‘텍스트’를 매개로 그 과제를 묻고 있다면, 작가는 ‘프레임’을 매개로 한다. 또 굳이 프레임을 의식하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회화를 프레임 자체의 문제로 환원한 쉬포르 쉬르파스(지지대와 지지체)와도 통한다.

그의 그림에는 유사현실과 가상적인 환영이, 회화의 본질을 묻는 메타회화이자 개념미술이, 회화를 구조적인 문제로 환원한 모더니즘 패러다임이 긴밀하게 직조돼 있다. 회화적 성과로 드러나 보이는 감각적 표면이 재현적인 것이어서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림을 더욱 탄탄하게 지지해주는 논리의 지층이자 베이스가 눈에 띈다.

도시-얼룩소2(The city-얼룩소2) 33.3x22.0cm Acrylic on canvas 2019

김영구는 프레임 속 프레임에 사계를 그리고, 풍경과 자연을 그리고, 섬과 도시를 그려 넣는다. 특히 바다를 곧잘 그리는 편인데, 아마도 실제 그 앞에 서 있었지 싶은 지점에다가 시점을 설정해 관객의 자연스러운 동일시를 유도하고 참여를 유도한다. 여기엔 이런저런 자연풍경과 함께 악기, 소라가 그려져 있다. 자연을 음색으로뿐만 아니라 음률로도 재현한 것이다. 음색과 음률이 상호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서 자연에 대한 감동을 배가하고 증폭시킨다. 말하자면 비록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어서 실제로 소리가 나지는 않지만, 그림 앞에 서면 왠지 파도가 밀려오며, 자연에 대한 감동을 음률로 번안한 바이올린 선율과 색소폰 연주가 들려올 것만 같다. 게다가 소라는 파도에 떠밀려온 태곳적 소리이자 자연 저편으로부터 건너와 존재의 비의를 들려주는 소리로, 듣는 귀에다가 비유한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음색이 음률을 떠올리게 한다? 소라가 귀에 비유된다? 이것들은 다 뭔가? 여기에는 감각 상호 간의 연동이 있다. 비록 감각들 저마다는 따로따로이지만, 그 이면에서 서로 통한다. 이렇게 서로 통하게 해주는 것이 공감각이고, 연상 작용이고, 암시다. 어쩌면 예술은 이런 암시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가시적인 것에게 비가시적인 것을 암시하는 기술일지도 모르고, 음색이 음률을 암시하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소라와 귀의 차이를 넘어 귀 대신 소라를 대입시키는, 소라가 귀를 대신하는, 그런 대입과 대리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김영구의 그림 앞에 서면 파도 소리와 자연의 음률이 들리고,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유래한 존재의 전설이 들린다.

도시-공사중(The city-Under construction) 162.0x130.3cm Acrylic On Canvs 2019

작가의 그림에선 대입과 대리의 기술이 수행된다고 했다. 여기에 대비의 기술이 부가되면서, 또 다른 의미론적 지평을 열어놓는다. 특히 도시와 섬을 소재로 한 그림에서 그렇다. 이를테면 도시를 소재로 한 그림에서 작가는 도시 이미지를 흑백 모노톤의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전사하고, 그렇게 전사된 이미지를 전면에 포치한 일상적인 모티브와 대비시킨다. 여기서 배경화면으로 등장한 도시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재현한 것은 ‘회색 도시’다.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도시이자 기계적인 도시, 그리고 중성적인 도시이자 익명에 의한 도시로 나타난 현대도시의 성분이다.

작가는 이런 회색 도시를 배경으로 그림 전면에 그려진 트럭 또는 공사현장표지판과 대비시킨다. 아마도 공사 중인 도시로 상징되는 역동적이면서 어수선한, 안정적이기보다는 불안정한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도시에서의 삶의 질을 논평한 게 아닐까. 특히 이런 대비가 두드러져 보이는 작품은 회색 도시를 배경으로 전면에 포치한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과일과 채소를 대비시킨 그림이다. 회색 도시와 자연을 대비시키고, 삭막한 도시적 삶에 풍문으로나 떠돌 자연의 생명력을 대비시킨 것이다. 한편으로 작가는 이 그림을 채식주의자로 명명하는데, 도시의 삶에 자연의 생명력을 수혈하는 것이자 최근 채식주의 열풍을 풍자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오히려 바니타스 곧 인생무상의 역설적 표현으로도 읽힌다.

대비가 강조되는 또 다른 그림으로 섬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역시 흑백 모노톤의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섬 이미지를 전사하고, 그렇게 전사된 섬 이미지를 전면에 그려 넣은 소라며 화병에 꽂힌 꽃과 대비시킨다. 두 개의 자연 곧 섬으로 대리 되는 자연 자체와 화병으로 대리 돼 인공자연을 대비시켜 자연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경우로 보면 되겠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자연 자체를 표상하는 섬이 흑백으로 처리된 점이다. 아마도 과거지사가 된 자연, 풍문으로나 떠도는, 상실된 자연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소라는 섬이 들려준 소리가 그립다. 섬은 자연 자체를, 일종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다시, 바다 앞에 서고 섬 앞에 서면 이처럼 파도에 떠밀려온 상실된 것들이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Frame-city-Vegetarian 259.0x181.8cm Acrylic on canvas 2014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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