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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미지를 ‘존재’의 세계로[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㉔] 이진록 작가
존재 130.3x130.3cm Oil on steel

[환경일보] 삶의 대한 애착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 곁에 같이 있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아쉬움을 화면에 조합해본다. 캔버스라는 이물질이 아닌 자연의 그리움과 추억의 일상이 응축된 오래된 나무 위에 표현한다.

지나간 삶과 곁에 있는 삶에 대한 애착과 욕구는 나의 정신과 혼미한 주변 세상을 정리하며 정돈하고 있다. 미묘한 표현을 반하고 구체적 표현요소들을 표현하기 위해 주변과 생활을 바라보며 끊임없는 구상과 스케치를 해본다.

두 개의 상반된 것을 하나의 화면으로 조합해 오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대상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묘한 상상을 맛보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동시에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지만, 느낌 없이 지나치는 일상의 하찮은 것들을 새로운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맛보게 해본다.

결국 그 일상의 표현들은 나의 주관이 들어간 것이다. 물체를 있는 그대로 찍는다는 ‘사진’ 역시 실제로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조명과 셔터 타이밍만으로도 수없이 다른 결과와 느낌을 줄 수 있다. 사실적이라는 ‘그림’ 역시 사실성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개성이 녹아들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표현의 역사적 근원은 反낭만주의적 성격, 즉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거부하고, 사실묘사에 있어서 철저한 정직성을 요구한다. 현실을 인식하고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개조하려는 자세를 갖추려 한다.

한국에서 사실주의는 통칭 ‘구상’이라는 용어와 동일시 돼왔다. 또 사실의 중요성에 대해 새롭게 주목하면서 일상의 것들과 삶의 한 조각을 인상 깊게 묘사하고 찬미하는 방식이야말로 나의 적당하고 절묘한 표현 방식인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 이미 관례화된 주제(풍경·정물·누드·인물) 시각에 대한 기법적인 혹은 감각적인 변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나만의 독특한 표현 기법을 보여주는 묘사중심의 회화를 형성하면서도 기본적으로 피상적 수준에서의 현실재현, 그 이상의 것들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이진록은 오랜 교직 생활을 바탕으로 정돈된 환경과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꾸준한 작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화면의 파괴가 지닌 다의성과 시각적 성격을 조명하고 있다.

작가들의 고뇌 속에서 탄생하는 주옥같은 작품은 그 사람의 환경, 생활방식 그리고 풍토와 교육이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은 오랜 교직 경험을 바탕으로 늘 정돈된 환경과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꾸준히 작업해 온 작가 이진록의 그림에서도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최근의 작업 <존재> 연작에서는 화면의 파괴가 지닌 다의성과 시각적 성격을 적극적으로 다시 보려는 노력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작가는 분할된 예술영역이나 전문 용어에 갇히지 않고 일상적 이미지들을 선정해서 완성 한 뒤 캔버스에 물감효과를 넣어 대각선으로 찢어 버리는 과감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이 감추고 있는 활력을 이미지로 풀어내고 있다. 아울러 자연을 사랑하고 존재하는 것의 존재 자체를 원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예술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과제, 진정한 형이상학적 활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삶을 꾸며나가는 의지를 예술의 원천적인 힘으로 보기 때문이다.

존재 130.3x130.3cm Oil on steel

2000년대 초기의 <기와시리즈>와 2010년대의 <존재>를 주제로 하는 작품들은 자연이 되고, 자연은 예술이 되는 지점을 자신의 운명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진록에게 ‘예술’은 차이 나는 생성의 세계를 존재의 세계로 근접시키는 방식의 이름이 됐다.

사실 작품은 예술의 세계와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경험과 의미를 명확히 표현할 수 없다. 작가는 예술 작품에 표현되거나 반영되는 세계 속에 또는 예술이 중재하는 실재 속에 거주하지도 않는다. 예술 스스로 진리와 권위의 물음을 떠남으로써 파편화되고 부정된 가능성을 얻게 된 대부분의 현대예술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진록은 예술의 진리와 권위에 대해 묻는다. 그는 사회적 판단력 또는 정신의 바탕인 인간의 양식을 되돌아본다. 공정한 정신에 기초를 두고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엄정한 정의를 겨냥하고 점점 전문화되고 복잡해져서 서로 협력하는 것도 어려워진 오늘날, 작가는 정의하기 어려운 유연한 생활의 지혜로 지켜보면서 결코 큰 목소리를 내지는 않더라도 그 본래의 힘을 끊임없이 발휘하고 있다.

존재 130.3x162.2cm Oil on steel

그가 그린 작품 대부분에는 생활 속에서 훈련된 지혜가 작동하고 있다. 사색하는 사람으로 행동하고, 작품의 형식적인 측면을 평가하거나 분석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과잉과 편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그림에 녹아있는 도덕적 감각은 심신관계의 작용 원리로도 파악되는 것 같다.

1980년대 데이비드 살르나 로버트 롱고 같은 신표현주의 계열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러한 불연속적인 시간과 다차원적 공간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진록의 작품 역시 이러한 포스트모던 미술의 전형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비선형적 시공간을 통해 의미의 고정점을 해체시켜 절대적 기준이 사라지고 불확실한 현대사회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비평 용어 ‘차연(differance)’의 개념에서처럼 말이다.

삶의 기억과 흔적들이 그려지고 분할되고 지워지는 연속된 과정, 그리고 유동하는 자연과 자아의 객관적 관계를 그려 보이는 것이 이진록 회화의 요체이다. 여기서 자신의 주관적 감정은 주로 색채를 통해 드러난다. 그의 작품이 주는 구성은 매우 모호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색채가 이런 산만함을 아우른다. 이진록의 작품은 언제나 화려하진 않지만, 독특한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현재의 자신 내면의 아우라를 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존재 130.3x130.3cm Oil on steel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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