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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깨닫지 못한 존재의 풍경···문희의 형상언어[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㉒] 조각가 문희
또 다른 나 100ⅹ80ⅹ30cm Bronze 2014

[환경일보]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라는 개체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끊임없이 발견하게끔 한다. 그러나 개개인이 한정 지은 유리상자 속에 갇혀 우리는 옴짝달싹 못 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만다.

유리상자를 깨고 나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즉, 온전한 내가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느끼며 우리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Go With’가 이뤄질 것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스토링텔링 조각가 문희는 이화여대 미술대학을 거쳐 ESMOD Paris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의 작업은 자신의 경험과 상상 그리고 조형감각에 따른다.

현대미술은 진화한다. 한국 미술의 경우 특정 표현양식이 주도하는 획일성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눈부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진화의 핵심에는 장르 간의 경계 해체, 소재와 재료의 다양화, 창의성과 표현에 대한 무제한의 자유가 자리한다. 여기에 상업미술 전공자를 포함해 미술과는 상관없는 비전공자들의 유입 또한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히는 요인의 하나임을 간과할 수 없다.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조각가 문희는 한국 현대미술에 또 하나의 새로운 형식을 제안한다. 지금까지의 인체조각이 인체의 외형적인 미와 내면세계 반영에 중점을 뒀다면, 그의 작업은 그 위에 감성의 옷을 한 겹 더 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체에다 자연의 이미지 또는 미묘한 심리적인 갈등, 잠재적인 욕망을 덧붙이는 방식을 구사해 지극히 섬세한 감성적인 표현에 도달한다. 다시 말해 이성적인 접근방식을 대체하는, 감성적인 표현을 중시함으로써 시각적인 이해를 초월하는 심미적인 세계를 소요할 수 있게 됐다.

쉼 75ⅹ40ⅹ30cm Bronze 2014

문희의 작업에서 인간의 형상은 자연미와의 조합을 이상으로 여긴다. 자연미와 자연현상을 작업에 투영시켜 자연과 합일되는 공간을 상정한다. 나무의 이미지 또는 바람의 존재를 형상화하는 작업 역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지점을 목표로 한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이라는 변할 수 없는 대전제야말로 그의 작품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그래서일까. 그의 조각은 하드웨어적인 이미지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이미지에 더 가깝다. 시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되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감성의 세계를 표상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가 작품에 표현한 이미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표상이다. 외부와 절연된 사유의 영역에서 배태한 심리적인 갈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내면을 작업에 투영시켜 감성적인 표현이 우세한 새로운 형태의 조형적인 형식미를 관철하고 있다.

동행Ⅱ 35ⅹ30ⅹ70cm Bronze 2014

문희의 조형적인 상상력, 특히 인체 그 외연을 감싸고 있는 표현을 살펴보자. 바람결이나 나뭇잎 같은 이미지와 직물을 두른 이미지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애정, 사색을 거쳐 그의 조각이 도달한 지극히 감성적인 숨결이자 피부이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사유와 상상의 날개가 지어낸 미려하고 섬세한 조형미는 피부의 감각까지도 일깨운다. 아름다운 인체를 두고 그 외연에 다채로운 표정을 부여한 것은 새로운 발상이다. 그의 미적 감각이 포장해 놓은 섬세하고 미려한 표정은 기존의 인체를 소재로 한 조각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미답의 세계인지 모른다. 이는 다름 아닌 감성의 세계다.

바람에 휘날리는 의상과 머리칼을 재현해 내는 형식으로 작업한 작품의 경우, 여기에 담긴 섬세한 조형 감각과 풍부한 미적 감수성은 아주 특별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흐름을 심상에 결부시켜 표현한 그의 조형적인 상상은 시각적인 즐거움과 쾌감을 선사한다.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오로지 조형적 상상이 만들어 낸 초월적인 이미지이기에 그렇다. 바람의 이미지라는 자연현상을 그 자신의 내면에 부는 바람에 결부시켜 이미지화한다는 발상이야말로 타고 난 감성의 소유자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생명의 손 50ⅹ70ⅹ70cm Bronze 2014

작가 문희가 다른 시각으로 작업할 수 있었던 데는 조각가로서 색다른 경험을 가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색다른 경험이란 전공은 물론이요, 그동안 해온 일이 조각과는 다른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면에선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해 조각가로서 입문하는 신예작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사뭇 역설적이다. 그는 조각가로서 필요한 수련이나 경력을 간단히 뛰어넘는 완성도 높은 작업으로 조각가로서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조각에 손을 댄 지 불과 5년이라는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작가로서 요구되는 수준에 간단히 도달했다. 문희의 작품을 마주하면 첫 작품부터 조각으로서 요구되는 기술적인 항목을 간단히 충족시킨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의 타고난 재능을 보면서 ‘과연 전문적인 미술교육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우지 못한다.

속삭임 180ⅹ60ⅹ80cm Resin 2014

소조로부터 시작되는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인체 조각의 기술적인 문제를 습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인체 조각으로서 갖춰야 할 형태미를 온전하게 소화했다. 기술을 습득하는 데 소비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이 첫 작업에서 이미 크게 탓할 데 없는 완성도를 보여줬다. 인체 조각으로서 갖춰야 할 비례에 서둘러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기술적인 이해가 빨랐다. 이는 흔치 않은 일이다. 조각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재료에 대한 숙지 그리고 기술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일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에게 조각은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최초로 흙을 손으로 만졌을 때 마치 자신의 피부를 만지는 듯한 친숙성과 일체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인물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마치 오랜 단련으로 손에 익은 듯 간단하게 인체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이런 경험은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설 때의 두려움조차 없었다. 단지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에 이끌리는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기다림Ⅰ 40ⅹ30ⅹ70cm Bronze 2014

물론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재료는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과제이자 난제였다. 조각에 관한 한 모든 게 처음인 그로서는 재료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일이 간단치 않았다. 재료가 지닌 속성과 실제의 작업에서 반응하는 자신의 감각이 일치점에 도달하는 데는 고통이 따랐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조각은 무엇보다도 재료에 관한 기술과 감각을 익히지 않고는 그 본질적인 문제에 직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문희는 타고난 미적 감수성과 조형 감각, 자기 확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어법을 확립했다. 마치 오래전 계획된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작업이 이뤄졌다는 느낌이다. 작업을 구상하고 소조 작업으로 구체화해 자신이 원하는 재료로 작업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작업에 관한 한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감성적인 표현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조각가 문희는 이렇게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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