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특집 특별기획
투시적 접근으로 회화적 한계를 벗어나다[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⑯] 2창수 작가
천국의 민들레 24x20x15cm 유리판 위에 아크릴물감 2010 2창수
이창수는 시각적인 관찰과 직접적인 체험을 중요시하며, 회화의 형식과 인식에 대한 한계를 실험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작가다.

[환경일보] “일찍 일어난 벌레는 일찍 먹이가 된다.”

일상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어떠한 노력을 해도 본인 자체가 벌레라면 상위 포식자의 먹이가 될 뿐이다. 처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노력해도 보다 큰 사회 구조 안에서는 불가능한 문제다. 화려하게 치장된 자본 구조에 자본 약자는 나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작품의 주제는 ‘어느 부지런한 벌레, 부속들에 대한 이야기’다. 자본에 대한 복속의 모습을 표현했다. 아울러 종교로 각자의 생각을 가두려는 것과 다시 자본으로 이끌려는 종교 자본에 대한 이야기다. 또 국가라는 단일 생명체를 위해 많은 부속 중 하나가 되어버린 자아에 대한 표현, 하나하나 아름다운 개체의 모습을 잊은 전체주의적인 상징물을 통해 ‘나란 존재는 무슨 의미일까’라는 물음을 담고자 했다. <작가노트 중에서>

자본은 어디에도 영향을 준다(부분) 60x35x20cm 유리판 위에 아크릴물감 2012 2창수

오래전부터 미술은 어떻게 현실을 반영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진화해 왔다. 화가들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미술로 표현해 타인들과 나누려 했다. 2창수(이창수) 역시 역사 속 수 많았던 화가들과 같은 방법으로 현실을 반영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이창수의 작업은 유리판 위에 유화를 그려 겹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레이어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3차원적 형식을 구현함으로써, 근본적으로 회화 장르에 대해 그가 추구하거나 고민해왔던 지점을 첨예화한다. 이전 작업에서 그가 내용적·형식적 모티브로 ‘시간성’에 대해 깊이 천착했다면, 현재는 이에 대한 무게중심이 ‘회화의 근본 형식’에 대한 주된 고민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레이어를 모티브로 활용하는 기존 작업은 주로 공기원근법적인 요소와 맞닿아 있다. 이로써 그 깊이감이나 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동시에 형식적으로 회화와 입체의 경계를 탈피하고자 애쓰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창수는 원근법적인 요소로서 레이어의 겹침 효과를 이용하기보다는 회화의 테두리를 벗겨가지 않는 전략에서 ‘평면 형식’에 대해 그가 견지하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을 거론하고 있다. 그의 작업에선 파편적인 평면들의 연속, 위치적으로 계산된 이미지들의 순서, 레이어와 레이어 간 간격에서 비롯된 다각도의 평면 이미지, 회화임을 강조하는 듯한 색·면 표현 등을 찾아볼 수 없다.

소재 측면에서 보면 주변 배경을 제거하고 생물을 포함한 단일한 일부가 작품에 표현된다. 이는 관조로서의 방식이 아닌 관찰로서 소재에 대해 접근하는 경우로 간주할 수 있다. 실제로 각 레이어는 사물의 전체가 아닌 부분들을 순차적으로 묘사한다. 순차적인 묘사는 이미지를 쪼개는 방식, 각 구성 위치, 쪼개어 놓은 부분들이 전체로 통일돼 보이는 효과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계산에 입각한 흔적이다.

천국의 민들레 20x20x15cm 유리판 위에 아크릴물감 2010 2창수

한편 레이어로 구분된 각 이미지의 부분 컷은 두꺼운 색·면 표현으로 이뤄져 정면에서 보면 하나의 평면 회화로서 고스란히 그 특성이 유지된다. 그러나 레이어 겹침에서 효과를 취하는 작업임을 간주하면 기존 회화를 감상하는 시점과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시점을 빗겨보면, 간접적으로 빛이 부딪히고 반사되며 시·지각적으로 인지되는 이미지가 각각 굴절률을 표하는 유리를 통한다.

이는 착시를 일으켜 평면들의 연속성이 입체적 조형성을 획득하거나, 그리하여 관찰하는 각도마다 ‘다른 전체-이미지’로 통합되기도 하고, 이내 사라지기도 하는 등 시각적 효과를 거두어낸다. 이러한 특징은 이미 기존 회화의 형식적 요소를 벗어난 지점이다. 또 투시로써 합성되는 ‘전체 이미지’는 어떤 각도에서든 동일한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기에, 기본적으로 그의 작업은 이미지의 굴절과 왜곡을 염두에 둔 결과로 보인다. ‘투시’는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투명한 유리라 하더라도 약간의 푸르스름한 색 비침으로 인해 우연히 공기원근법적인 효과가 보이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창수의 작품은 이를 크게 부각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와는 무관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 매너리즘 시기 방법적으로 고안된 왜곡상을 말하던 ‘아나모포시스(특정한 각도에서 보거나 거울 따위에 비추어 보았을 때 바른 형태로 보이는 왜상 혹은 그러한 현상을 이용한 표현 기법, anamorphosis)’가 떠올랐다. 일종의 판타지적인 눈속임을 위한 ‘과학-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작가 이창수가 ▷자기 회화의 지형을 3차원적으로 확대해 투명한 유리를 화면 및 레이어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투시를 가능케 한 부분과 ▷왜곡을 전제로 한 ‘투시’ 자체에 비율과 형식을 맞춰 이미지를 세단했다는 것은 관점을 위한 철저한 실험이기 때문이다.

Don't forget(부분) 35x60x20cm 유리판 위에 아크릴물감 2011 2창수

미술사에서 매너리즘 시기는 예술적 재현을 위한 모든 과학적인 지식과 비례에 대한 온 지식이 만개했던 때다. 이 시기는 당대 예술가에게 더는 지식적으로 확장하고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애매했던 때이기도 했다. 유사하게도 현재 무한 반복되고 있는 회화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이미지 자체만으로 신선하다 할 수 없는 한계적 요소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많은 작가가 이러한 한계를 설치적인 접근으로 해소하고자 한다거나, 타 형식으로 전향을 꾀한다.

반면 이창수는 우선 태도적으로 그것이 회화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회화이길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 회화의 형식과 인식에 대한 한계를 실험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아나모포시스’는 당대 지녔던 형식을 완전히 새로움으로 극복하고자 한 시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미지를 왜곡하는 형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작가의 주관 내지는 터부시되는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내용을 위한 하나의 형식 실험이었다.

For the Love of God 65x30x35cm 유리판 위에 아크릴물감 2011 2창수

이창수의 작업에서도 일부 유사한 의미를 추출해보자면,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하나의 면이 그 소재를 쪼개어 객관적으로 묘사한 정물 형식을 갖추고 있고, 또 다른 면은 소재의 이면적 내용이나 작가의 주관적인 상상의 영역으로 전혀 다른 풍경을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나무의 또렷한 형상 이면에는 속이 허하게 비어있는 형국이라든지, 마치 유리 수조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 보이는 장면 이면에는 물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물고기의 비애가, 저 하늘 위 스카이다이빙을 꿈꾸는 듯한 풍경이 자연스레 연상되며 이로부터 해학적 감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면의 내용은 작품이 지닌 과중한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단순한 형식실험에 그칠 수 있었던 위험에서 내용상으로 긴장 완화를 시키며, 감상의 단계를 고려할 수 있게끔 열어둔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유머’이다. 우리는 정신적인 집중과 긴장의 상태가 어느 순간 어떤 표현방식으로 우연히 풀리는 상황을 종종 마주한다. 이 상황으로 ‘집중의 에너지’는 경제적으로 남는 ‘잉여의 에너지’로 바뀐다. 또 이러한 상태에서 발산되는 감정(잉여의 에너지)은 ‘쾌’를 가져온다. 유머 내지 유머러스한 태도는 예술작품, 혹은 예술의 태도에 대한 심리적인 과정에서 전제해야 할 하나의 가치로 자리할 이유가 충분하다. 작가 이창수의 작품은 이를 더욱더 수월하게 구분 지어 준다. ▷두꺼운 질감의 이미지 표현과 ▷단순히 정물로서만 보일 수 있는 부분 ▷입체적인 접근으로서 과학적인 태도가 지닐 수 있는 무거운 위험을 일종의 ‘유머’로 긴장을 완화하며, 삶을 조근히 사고하는 감상으로 전이된다.

이창수는 현재의 작업이 아직 실험기로 일련의 완성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시각적인 관찰과 직접적인 체험을 늘 중요시해왔으며, 그 일환으로 감상자에게 그것이 지닌 양태를 수용하길 강요하기보단 작품 자체를 스스로 관찰하고자 애쓰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게끔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아마도 그의 작품과 작업관을 살피는 데 있어서 긍정적 고정관념 내지는 하나의 편견으로 자리해 계속해서 그를 예의 주시할 만한 기준이 되리라고 본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채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포토뉴스
[포토] 대한건설보건학회 후기 학술대회
[포토] 한국물환경학회-대한상하수도학회 공동학술발표회 개최
[포토]최병암 산림청 차장, 생활밀착형 숲 조성사업 준공식 참석
[포토] ‘제22회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 시상식 개최
수원에서 첫 얼음 관측
여백
여백
여백
오피니언&피플
제9대 임익상 국회예산정책처장 임명제9대 임익상 국회예산정책처장 임명
김만흠 국회입법조사처장 취임김만흠 국회입법조사처장 취임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