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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표현으로 가득 찬 ‘재밌는 카타르시스’[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⑪] 설경철 작가

Episode1816 65x53cm Oil on C.P objects 2018 설경철
극사실 기법으로 다양한 오브제를 그려넣는 작가 설경철

[환경일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물질은 무엇인가? 동시대의 대표적인 산물은 ‘컴퓨터’(Computer)라고 생각한다. 이 컴퓨터를 이용한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표현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수준에 이르렀다. 현대인의 삶은 컴퓨터와 정보통신(IT, Information Technology) 분야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 의존도는 필수적이다. IT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자동차, TV, 게임기, 전기밥솥, 잠금장치까지 우리 삶 곳곳에 적용돼 있다. IT는 소프트웨어 분야 중 인간지능의 한계를 가늠하는 대결이라는 바둑대결에서 이미 알파고(AlphaGo)의 위력으로 입증되지 않았는가.

1996년 뉴욕공대 유학 시절은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의 예술화’라는 오브제(Object)를 찾아 방황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학교 실습실 창고에 버려진 84년식 매킨토시 컴퓨터를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방과 후 시간을 보냈다. 큰 캐비넷 만한 크기의 컴퓨터는 100여 장의 메인보드와 수십 킬로그램의 와이어로 복잡한 구조였고, 무게 또한 대단했다. 기숙사에서 메인보드 몇 장을 가져와 브롱스(Bronx, NY)에서 만났던 맹인을 묘사하고, 작품 제목을 ‘컴맹’이라 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맨해튼(Manhattan) 플레이아데스 갤러리(Pleiades Gallery)의 전시에서 자신감을 느끼게 됐고, 오늘까지 지속해서 작업해 오고 있다. 당시 새 미술 재료를 찾던 나는 메인보드를 중심으로 분리와 조합을 반복하며 그림의 밑바탕을 만들기 위해 여러 실험을 했다. 초기 주된 주제는 IT를 두려워하는 기계치와 컴퓨터에 자신이 없는 아날로그 세대의 표정을 메인보드 위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이젠 주제의 폭을 넓혀 위대한 과학자, 컴퓨터와 관련된 인물을 다각도에서 연관성을 찾아 표현한다. <작가소개 중에서>

Episode1525 84x58cm Oil on Objects 2015 설경철

“책으로부터(From the book)”라는 부제를 단 일련의 극사실주의(Hyper-realistic) 연작은 설경철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회화다. 펼쳐진 악보를 배경으로 시계, 날개, 새, 종이학, 타자기, 바이올린 등 다양한 물상들이 무중력의 공간에서 날고 있는 듯한 그림들이 그의 첫 번째 경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악보나 원고지 위에 연필로 예술적 표현을 해왔다. 인쇄된 책의 글자 위에 사물을 묘사하거나 물감으로 페인팅해 미술화 하는 작업을 펼쳤다. 이렇듯 특이한 조합으로 이뤄진 물상들은 악보에서 유출되어 음계가 아닌 그림을 통해 음악의 내용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마치 음계를 연주하면 악보 속 이미지를 현실 세계로 불러내는 신비한 능력을 갖춘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 ‘잉크하트(2008)’처럼 문자를 이미지로 불러내 읽으면서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면서 느끼게 하는 이를테면 ‘보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이것이 설경철의 “책” 시리즈이다.

Episode0202 106x78cm Oil, Objects 2002 설경철

설경철의 두 번째 경향은 “오브제 페인팅(Object-painting)”이다. 1970년대부터 미국 현대미술의 영향으로 개념미술가, 초현실주의 작가, 그리고 하이퍼(초, 超) 리얼리스트로서 활동해 온 그는 1996년 유학을 겸한 작품 활동을 위해 미국에 건너가면서 새로운 미술 재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오브제 페인팅(Object Painting)은 그즈음에서부터 작품화되기 시작한 것 같다. 작가의 의견에 따르면, 뉴욕공대(NYIT) 재학 중 매일 실기실에서 컴퓨터의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면서 컴퓨터 하드웨어(Hardware)를 이용한 미술 작업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컴퓨터와 벽시계, 오디오 스피커 등 현대를 대표하는 기계적 물질의 미술 재료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서 출발한 셈이다.

Episode1811 90x72cm Oil, Objects 2018 설경철

그의 기계에 대한 관심은 1980년 작 “Episode 8004”에서 보듯 병실에 누워있는 로봇을 묘사한 작품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가 선택한 재료의 고유성이나 주제와의 연계성 내지는 적절성을 신중히 고려한 실험성을 설명하자면, 컴퓨터 부속품들로 화면을 만들고 브롱스(Bronx)에서 만난 맹인을 묘사하고 작품 제목을 “컴맹 9703”이라고 했다. 이러한 주제와 기술 방법은 그의 의욕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로 인해 빠른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선택한 재료의 고유성이나 주제와의 연계성 내지는 적절성을 신중히 고려해 실험성을 발휘한다. 컴퓨터 부속품들로 화면을 만들고 인물을 묘사해 제목을 붙인다. 이러한 기술 방법은 그의 의욕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로 인해 빠른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작가 설경철이 가지고 있는 그만의 예술에 대한 시각적 특성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파피루스(Papyrus) 발명처럼 하나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본연의 감각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전환의 자세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레디메이드 작품 “Fountain, 1917”이 시사하는바, 특별한 리얼리티에 관심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마르셀 뒤샹 이후 현대미술은 하드웨어(Hardware)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현대미술은 기존의 전통적 화구사용을 거부하거나 새로운 미술도구로 선택한 재료에 대한 특성을 연구하는 경향이 짙다. 기존의 화구를 사용하는 의미는 그 자체가 재료의 모방이고, 이러한 모방의 진정한 창조는 그 출발점부터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일상에서 찾아낸 사물들을 새로운 시각표현의 재료로 선택하는 것은 작품에 현실감을 더 할 수 있는 조건의 마련이다. 또 선택된 재료의 고유성은 화가(화풍)의 독특성을 창출하는 데 그 유리함을 내포하고 출발점을 점유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어쩌면 그는 화가이기 이전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출중한 장인으로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Episode1607 65x53cm Oil on Objects 2016 설경철

설경철은 자신이 선택한 오브제(Object) 위에 유화나 아크릴 물감으로 이미지를 극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린다. 정밀한 묘사에 관한 한 그에게 더는 주문할 것이 없다. 그에겐 극명한 사실적 묘사를 가능케 하는 재능이 있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노력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을 남기는 번뜩이는 재기가 엿보인다. 그의 그림에는 사유와 그 흔적으로서의 철학적인 내용이 내포된다. 그는 시·지각을 뛰어넘어 그만의 표현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작가 설경철의 미술창작에 대한 철학은 미술 작품엔 회화성을 바탕으로 시대정신과 작가의 예술철학이 내재된 시각적 조형 표현이거나, 그 이상의 무엇일 것이라는 신념에서 유래된 것 같다. 이러한 논리에서 오브제 페인팅(Object Painting) 작품 경향이 있다.

설경철의 작품은 급속도로 발전해가는 현대 기계 문화로부터 동시대 문화의 단면들을 드러낸다. 그는 흥미로운 사물의 기능성과 재료적 특질, 그리고 고유성 위에 그 사물과 연계된 이야기 혹은 진실을 일상적 사물과 연관 지어 풀어낸다. 이러한 작품 제작은 작가 설경철에게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그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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