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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 아름다움, 존재의 비밀을 찾다” 정병구 작가[김중식 작가가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②] 정병구 작가
정병구 작가는 미술 교육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환경일보] 한 존재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성장과정 비밀이 그곳에 담겨 있고, 그것은 미래를 결정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원도 원주에서 육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나의 중·고교시절은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로, 지금과 달리 제대로 된 예능교육이 이뤄지질 못했다. 한 분의 선생님이 음악·미술·기타 과목을 모두 가르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해 5살 무렵이었던가 당시 전통적인 한옥이었던 우리집 흰 외벽구석에 기차앞머리부터 그리기 시작해 벽이 끝날 때 까지 빙 둘러 가면서 그리다가 부모님으로부터 혼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종이만 보면 그곳에다 그림을 그리고 색칠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중학교 2학년 내가 다니는 학교 미술선생님이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알고, 당시 원주시와 자매 결연을 맺은 미국의 한 도시에서 학생들의 작품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와서 내 그림을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내 바로 밑 여동생에게 한복을 입혀 2절지 켄트지 종이위에 연필로 그려 보냈다. 이것이 미국의 각 지역신문에 대서특필돼 내 작품 사진이 전면 절반 크기로 게재된 신문을 내가 다니던 학교로 보내져와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여기에 힘입어 그 후로 나는 그 당시 서울 각 대학에서 주최하는 미술 실기대회에 열심히 참가해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러나 장남인 나에게 부모님은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시 내 바로 위 누님이 피아노를 전공하고자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장남인 내가 당시에는 미래에 가난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미술 분야를 전공할까 걱정하시면서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당시에는 미래에 미술을 전공해야 된다는 뚜렷한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그리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웠을 뿐이었다. 학창시절 나는 운동(특히 축구)도 좋아했고, 공부도 잘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 시절 나는 공부와 그림 외에는 다른 어떤 것들도 생각할 겨를 없이 그 두 가지에만 몰두했다. 휴일엔 시간이 주어지면 물건들을 배치해 실내에서 정물화를 그렸다. 화창한 날이면 이젤과 화구통을 들고 밖으로 나가 거리든 시장이든 들판이든 어디서나 이젤을 펼쳐 놓고 그림을 그렸다.

내면으로부터의 소리-사유 23x27x27cm Bronze 2009년 정병구

그러다가 두 살 위인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누님으로부터 당시 예술 교육의 불모지였던 원주에 누님이 다니는 학교로 훌륭한 미술선생님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장에 달려가 뵈었다. 그 선생님이 내게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줬고, 나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해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잠시 원주로 왔다. 원주를 떠나신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LA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열심히 펼쳤다. 국내에서는 국립 현대미술관 초청으로 대작들을 전시하기 위해 잠시 귀국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후에는 많은 작품을 그곳 LA 미술관에서 구입해 지금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아무튼 나는 그 선생님을 처음 뵌 후 부모님을 졸라 어렵게 우리집으로 모셔왔다. 나는 선생님 옆방에서 공부하며 선생님으로부터 데생 수채화 유화를 배우면서 미대에 진학하기로 내심 정했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미대로의 진학을 꿈꿨다. 당시로 보면 서울의 일류 고등학교 학생들만이 가는 서울대학교를 소도시의 지방학생이 가는 것은 무리한 도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서울대학교 교표를 그려 책상위 벽에다 붙여 놓고 밤새워 공부하고 그림 그리며 합격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또한 그렇게 했다. 서울대 서양학과를 가기 위해······.

그러다가 선생님이 친분이 두터웠던 서울대 미대 후배이자 조소를 전공하신 분과 함께 우리집에 오셨다. 그분은 내가 만든 자소상을 본 뒤 내게 즉석에서 서울대 조소과를 지망하도록 권유하고 나 또한 입체적 표현이 평면회화보다 흥미롭다고 느껴 조소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전공을 바꿔 서울대 조소과로 응시해 원주에서는 처음으로 합격했다. 나는 항상 두 분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작가소개 중에서>

‘인생의 유한함과 우주의 무한함을 생각한다면 무슨 일이든 극복할 수 있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하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도 예술이다.’

내면으로부터의 소리-소통 42x20x33cm Bronze 2009년 정병구

작가들에겐 끊임없이 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있다. 또 나름의 사유를 통해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보이고 느껴진 것들을 현재에 투사하고, 미래에 반영해 작가 자신의 삶의 그림자 속에 머물도록 허용한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은 작가 자신이 어떠한 참조세계를 통해 보느냐에 따라 이전의 다른 참조세계를 통해 드러날 수 없었던 사물에 있어서의 새로운 정신을 드러내 보인다.

나의 작품들은 크게 둘로 나눠 구분되는데, 첫째는 인체를 단순화해 표현하면서 지구별이 아닌 우주공간 속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 그리고 사유를 통한 나의 우주관을 작품을 통해 내보인다. 이로써 내면으로부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하여 ‘나의 소리는 우주를 향한 소리이며, 우주의 소리는 나의 소리이길 소망한다’는 정신을 되새긴다. 이 과정에서 나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테라코타(Terra-Cotta, 양질의 점토로 구워낸 토기류)나 브론즈(Bronze, 청동으로 만든 작품)와 같은 견고한 재료를 이용해 표현한다.

내면으로부터의 소리-물고기들의 행진 86x60x105cm Aluminium 2019년 정병구

두번째는 알루미늄(Aluminum, 은백색의 부드러운 금속) 재질을 사용해 물고기를 주제로 형체를 단순화하고 절제된 색을 입혀 표현한 것들이다. 나에게 있어 물고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사물(물고기)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와 자연관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나에게 주어진 사물들을 사유하면서 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형체와 색이라는 조형수단을 통해 표현하고, 그것을 내 자신의 영혼에 비춰 보는 것들이다. 이는 작품제작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적 의미와 내 나름대로의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이다.

나는 어린 시절 해질녘 개울가에 앉아 수면위로 솟구치며 간간이 튀어 오르는 은빛 비늘의 물고기를 신기하고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다. 어둠이 주위를 점점 삼켜가는 대기 속 검푸른 물결 위로 물고기들이 모습을 보였다. 그런 물고기들의 비상은 물속이라는 미시적 공간을 벗어나 무한의 공간속으로 날아가고 싶은 억제됐던 그들의 몸부림이며, 우주를 향한 그들의 필사적인 몸짓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자신의 온몸을 던지는 이유가 자신은 우주의 산물이며, 우주를 향한 몸짓은 자신의 비밀과 우주의 비밀이 근본적으로 일치함을 알리려는 듯······. 그리하여 무한의 우주공간 속으로의 비상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는 듯······.

내면으로부터의 소리-물고기의 춤 78x36x100cm Aluminium 2019년 정병구

인간과 뭇존재(물고기 포함)들은 상보 상생하는 관계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동시에 우주를 향하고자 하는 내면적 욕구를 공유하고 동질감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닿지 않는 별을 향해 팔을 뻗고, 맑은 수면위에 잠겨있는 별들을 세어보면서 우주를 생각하는 것······. 하늘의 별들을 헤아려 보면서 겸손해질 때 비로소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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