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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과 화면의 새로운 중립지대’ 구현, 김중식 작가[김중식 작가가 만난 뻔FUN한 예술가] 연재 개시
김중식 작가.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회화를 바탕으로 일루저니즘의 세계를 재창조해 낸 서양화가다.

[환경일보] 나는 매일 새벽에 붓을 잡는다. 새벽 햇살에 비친 유리알처럼 맑은 아침이슬을 바라보고, 작은 우주를 생각하며, 내 작품은 탄생된다. 보석 같은 물방울 속으로 비치는 내 여인들의 모습은 그 무엇 하고도 바꿀 수 없는 순수함 그 자체이다.

난 그래서 새벽을 좋아한다. 밤새 고통 속에서 잉태한 나의 생명체가 탄생되며, 내가 꿈꿔왔던 여인들이 살아 움직인다.

나의 여인들은 매일 유리알같이 맑은 아침 이슬 속에서 태어난다. 라파엘로의 여인, 모성애,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 모네의 피리 부는 소년······. 그냥 아침이슬은 나의 동화이고, 꿈의 나라이다. 나만의 소우주, 달항아리 속의 이야기는 잉태한 엄마 뱃속의 아기 탄생과 같이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난 하루하루가 즐겁고 신이 난다. 내 주변의 기쁨, 환희, 시기, 질투, 탄생, 죽음을 나의 행복이 가득한 달항아리 속에 가둬 아름다움으로 탄생시키고 싶다.

맑고 영롱한 이슬처럼 순수한 나의 항아리는 누군가 이름도 모르는 도공이 빚어낸 우리의 혼이 깃든 마음속의 항아리이다.

그래서 난, 이슬을 담고 있는 달항아리를 사랑한다. 그 안에는 어느 무엇이든 담아도 아름다움이 가득해질 것 같다. 내 달항아리 속의 소재는 어느 대상이든 아름다워질 수 있고, 생명의 빛을 발하며, 노래를 부를 것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모나리자와 달항아리 112x112cm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2010년 김중식

이미지를 화면에 정착시키는 일은 회화의 역사만큼 오래되고 다양한 변화를 밟아왔다. 그중에서도 대상을 ‘묘사하고’ ‘그리는’ 일은 회화의 가장 대표적이고 전통적인 방법론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이 한편으로는 고답적인 목적의식으로 말미암아 회화를 오랫동안 정체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해 왔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현대회화는 바로 이 정체성(停滯性)의 장애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표현의 한 대상으로 설정한 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따라서 현대회화는 우선 회화 자신을 묘사하는 지점, 예컨대 ‘회화란 무엇인가?’하는 자의식으로 향한 물음과 더불어 그 기능과 역할, 나아가 그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에 시선을 두고 자신의 미래를 역동적이고 광활한 실험의 영역으로 이끌어간다.

바로 ‘그리는’ 일의 앞뒤에 자리 잡을 행위성, 곧 ‘긋는’ 일과 ‘칠하는’ 일이 회화의 전면으로 돌출하게 되는 예가 그것이다. 추상회화의 새로운 전개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실마리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그리는 전후의 긋는 일과 칠하는 일은 그 무엇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자유로움과 연결 된 채 스스로 진행형으로서 동작 상태를 표현대상으로 승격시켰다. 이로써 한결 자립적이고 창조적인 자세를 확보하게 됐다. 이러한 자립적인 시각의 확보는 문맥적으로 ‘무목적의 목적성’과 같은 자율의 이념 아래 보다 다양한 창조적 방법론을 일궈 내며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영역의 확장을 시도하게 됐다.

그것은 특히 긋는 일과 그리는 일의 전초단계로서 상정되는 ‘스미고’, ‘흘리고’, ‘뿌리고’, ‘번지고’, ‘찍는’ 일들을 화면에 자립적으로 실존시킨 채 마침내는 행위와 장(場, 바탕)과의 상호관계로부터 실행되는 ‘뚫고’, ‘찢고’, ‘태우는’ 따위의 이른바 개념적 공간창조로까지 이어지는 추상의 맥락을 열게 했다. 그리고 이 추상으로 향한 일방적 관계가 팝아트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이미지의 재등장과 함께 표현방법에 있어서 차갑고 기계적인 메커니즘의 활용을 통해 보다 복합적인 이미지의 문맥을 형성하며 더욱 자율적인 회화의 신화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피리부는소년과 달항아리 130x162cm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2010년 김중식

작가 김중식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자신의 회화를 출발시킨 채 회화의 본질과 그 기능에 관한 물음을 시각적인 재해석의 실험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표현어법으로 승격시켜 놓았다. 그는 우선 두 가지의 서로 상충되는 화면을 겹쳐 이미지를 중첩시키는데, 그것은 손으로 그리는 대상적 이미지의 화면과, 구멍이 병열로 뚫린 인쇄 메커니즘의 평면적 화면이 한 곳에 상충해 일련의 시각적 ‘일루저니즘’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

이 양면적 복합체의 화면은 마치 그리는 일과 찍는 일의 주객관적인 접합 점을 교란시켜 일어나는 인식의 혼란을 상징하는 듯 이미지의 감각적인 동시에 개념적인 공간창출이라는 이중적인 시각상을 한 화면에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관계의 조율을 통해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이른바 ‘그린 화면’과 ‘인쇄 화면’의 비교를 통해 상호관계를 시각적으로 조율한 채 그림의 주객관적인 프로세스가 갖는 차이점을 표현의 한 양상으로까지 발전시킨다.

여기서 비교, 종합되는 두 개의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그려진 이미지임에도 마치 그려진 것과 인쇄된 것 사이의 관계가 절충적으로 예시되는 느낌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결국 ‘인쇄 이미지의 묘사’와 ‘그 묘사 이미지의 표현’이 기묘하게 만나 또 다른 일루전의 세계를 창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새로운 시각적 창조성의 문제를 다각적인 차원에서 다뤄 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회화가 회화 자신의 수단과 방법론을 실험과 표현의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마릴린먼로와 달항아리 130x130cm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2010년 김중식

그것은 기존의 익명적이고 균질적인 인쇄 이미지를 손으로 그리고, 그 위에 인쇄의 메커니즘과 같은 망점의 그림을 중첩시킨 다음, ‘그리는’ 일과 ‘찍는’ 일의 상호관계를 중립적으로 설정한다. 여기에 그 망점 구멍들의 숱한 개체성이 기묘하게 통일적인 평면의 구성인자로서, 전체로 향해 다시 환원되는 구조다. 그 결과 전체와 개체는 상호 의존적이고 서로의 존재성을 순환시키는 자세를 가지며, 하나의 표현으로서 성립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종래의 팝아트와는 다른 김중식만의 팝이라 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

어쩌면 포스트 팝 아트의 한 양상이라 할 수 있는 ‘더블 팝 아트’의 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팝아트는 대중이라는 ‘팝’과 순수미술이라는 ‘아트’의 합성어인 까닭에 미술 자체를 연구 분석하는 미술이라는 뜻에서 아트+팝+아트로서 ‘더블 팝 아트(이중의 팝 아트)’라 불러 본다.

엘리자베스테일러와 달항아리 80x65cm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2010년 김중식

물론 그도 팝아트의 대중소비문화의 아이콘과 일상적 소재들을 그대로 원용해 등거리의 시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그 소재는 대중미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한 단편은 아니다. 오히려 회화라는 실험대 위에 놓인 이미지의 발생과 그 프로세스의 해부라 할 수 있다. 마릴린 먼로, 달항아리, 반가상, 모나리자, 오드리 헵번 등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던 이미지가 화면에 그려지면서도 어딘가 생경하고 중화된 느낌을 동반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따라서 그는 팝 아트의 새로운 변주자로서, 그리고 동시에 자기 비판적 회화의 새로운 추진자로서 화단에 새롭게 데뷔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 나타나고 있는 일루전의 세계는 이미지의 세계가 애당초 갖는 오류와 착각의 프로세스를 새삼스럽게 기만해 화면이 갖는 무수한 시각적 정서와 감수성을 또 다른 차원 속에 새롭게 일궈 환기시키는 순환적 추진체로서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의 모든 근원은 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한 점이 모여 큰 형태가 되고 깨진 유리조각이 모여 원형이 되고, 작은 먼지가 모여 형태가 만들어지고, 나의 그림은 언제든지 깨질 수도 있고, 흩어져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질서가 깨어질 수도 있는 그런 집합체인 것 같다”는 작가 자신의 독백은 그의 순환적 의식의 한 단면을 다시금 확인하는 느낌이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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