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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들려주는 노래 6]
익숙함, 눈치채지 못하게 삶을 지탱해주는 힘

[환경일보] 서울 시내에는 꼭대기 층이 까마득한 새로 지은 고층 건물들이 많다. 그래서 어쩌다 예전에 지은 낮은 건물이나 나이 좀 먹은 길을 발견하면 오래된 친구라도 발견한 양 반갑다. 긴 세월과 숱한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그 자리에 있어 준 것이 고마워지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나라 보물 제1호로 지정된 동대문 일대를 걸어보려고 한다. 동대문은 임금이 살고 있는 궁궐을 비롯해 중요한 국가 시설이 몰려있던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나간 시간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 선농단과 선농단역사문화관

선농단

제기동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오면 선농단 가는 길 안내 표지가 있다. 골목길을 따라 도착한 선농단은 연둣빛 넓은 잔디밭에 사방 4m의 돌단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돌단과 홍살문 넷이 전부이다. 그리고 넓은 터 안에는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선농단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와 후직씨를 주신으로 제사 지내던 곳이다. 조선 성종 7년 지금의 위치에 단이 축조됐고, 왕들은 이곳에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선농제를 지냈다. 또 왕이 친히 밭을 갈아 백성들에게 농사일의 소중함을 알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폐지됐다. 일제는 그곳을 청량대공원으로 만들어 선농제의 역사와 가치를 말살했다. 폐지된 제향행사는 1979년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선농단 친목회에 의해 재개돼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에서 매년 선농제를 모시고 있다.

선농단역사문화관

선농단으로 걷던 방향으로 조금 더 걸으면 선농단역사문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선농단이 그 역사의 현장이라 한다면 역사문화관은 선농단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다. 현재 동대문구에서 무료로 운영하고 있으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관은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이다. 벽면에 신농 씨와 후직 씨의 얼굴도 있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선농대제의 의복이나 음식을 올리는 진설 방식도 볼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간다면 직접 의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주위에는 동생과 탁본 체험을 즐기는 아이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전시관에는 우리가 흔히 먹는 설렁탕 사진이 있었다. 음식이 선농제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은 선농제를 마친 후 백성들과 함께 잔치를 열었는데 그때 올린 선농탕이 지금의 설렁탕이 됐다고 한다.

◇ 서울 약령시 한의약박물관

서울 약령시 한의약박물관

한의약박물관에 가기 위해 다시 제기동역으로 걸음을 돌렸다. 2번 출구를 지나 국민은행 앞에서 왼쪽으로 돌면 정면에 ‘서울 약령시’라고 쓰인 큰 문을 볼 수 있다. 그 문을 통해 들어가면 약재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이 바로 서울에서 가장 큰 한약재 유통 전문 시장인 약령시장이다. 시장 안에는 갖가지 한약재들의 달짝지근하고 쌉싸래한 향이 가득했다. 그곳을 걷노라니 더불어 건강해지는 듯했다.

한옥 스타일로 멋스러운 건물의 한의약박물관은 2006년에 개관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000원이다. 1층에는 영상 체험실과 한방 뷰티숍 등이 자리하고 있고, 2층에 올라가면 350여 종의 다양한 약재들과 의서류는 물론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서울 약령시의 역사도 알 수 있다. 특히 약초 마을 이야기는 당시 모습을 축소해서 만든 모형이 있었다. 조선시대 약방을 재현해 놓은 약전 한약방은 사진 찍기도 좋고 내부 모습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한약재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체질별로 도움이 되는 약재의 정보도 제공받을 수 있다.

전시관을 구경하고 나오니 한쪽에서는 외국인들에게 무료 한방차 시음과 체험 행사도 진행하고 있었다.

◇ 서울 약령시와 경동시장

서울 약령시에서 길을 건너자 경동시장이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만큼 광활한 시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동네가 다 시장인가 싶을 만큼 큰 규모다.

경동시장은 6·25 전쟁 이후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의 농민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들고 청량리역으로 몰려들어 장사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동대문구 제기동과 용두동, 전농동 일대의 서울약령시와 경동 신시장, 경동 구시장, 경동 빌딩, 한솔 동의보감, 기타 유사시장으로 이뤄져 있다. 규모는 인근 시장까지 포함하면 약 10만㎡이다. 과일이며 건어물, 저쪽으로는 수산물 시장까지도 보인다. 물건을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바쁘다. 동네 시장과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 정릉천과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

아무리 열심히 봐도 오늘 다 둘러볼 순 없을 것 같은 광활한 시장을 뒤로하고 다음 코스인 정릉천으로 방향을 돌렸다. 제기동역을 기준으로 4번 출구를 뒤에 두고 길을 내려갔다.

정릉천은 북한산에서 시작해 동남쪽으로 흘러내려와 월곡동에서 정릉천의 지류인 월곡천과 만나 남쪽으로 흘러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청계천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이름에서 보이듯 정릉과도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묘 정릉이 있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물길을 따라 걸으니 도심이지만, 잔잔한 물소리와 바람이 있어 마음의 여유가 찾아들었다. 그래서일까 마주 오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편안해 보인다. 이동하느라 지나는 길이지만 이 시간에도 치유를 할 수 있다.

산책을 하다가 다음 코스로 가기 위해서는 정릉천 중간에 서울시설공단이 보이면 그만 빠져나와야 한다.

청계천박물관 앞에 있는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은 1960~1970년 청계천 일대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온 판자촌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곳이다. 크진 않아도 저 멀리서부터 ‘뭐 하는 곳이지?’ 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건물 밖에는 청계 다방, 광명 상회, 청계 연탄 등 간판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당시 학생들이 입었을 법한 교복과 교련복부터 교복 모자, 반장 완장, 책가방 등 소품까지 관람객들이 입고 촬영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교실과 교과서, 걸상은 물론 집 안의 풍경, 음악 LP판 등 당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 용두공원

용두공원

판잣집 체험관에서 서울시설공단 쪽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기는 하지만 400m도 안 되는 거리에 공원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분수대에서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는 물이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기대 없이 찾아간 곳이라 그럴까. 조각상과 꽃들이 있는 용두공원은 참 아름다웠다.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과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하청호 시인의 ‘어머니의 등’ 시가 적힌 비석도 보이고 조형물도 있었다.

평소에는 운동기구나 놀이기구가 마련돼 있어 구민들의 쉼터로 이용된다. 야외 상설공연장에서는 가끔 공연도 열리고 동대문구 청룡문화제도 개최된다.

◇ 동대문 골목길을 나오며

동대문 코스에는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장소들이 많았다. 특별하지 않아도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야말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비결이 아닐까?

<글·사진=박정은 자유기고가>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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