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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떡갈나무 혁명⑦] 사회가 복잡하다는 것이 곧 다양한 것은 아니다!기후위기 시대에 루만의 복잡성 감축을 다시 생각한다
신승철 작가

[환경일보] 현대문명은 다양성이 존중되고 복잡해진 사회라고 말한다. 그런데 다양성과 복잡성을 동급으로 놓고 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면 사회는 무척 복잡한 것만 같다. 셀 수도 없는 미디어의 방송프로그램들, 종류도 많은 상품들, 기능조차도 알 수 없는 전자제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복잡하다는 것이 다양하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TV의 프로그램들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TV를 본다는 경우의 수는 같다. 종류도 많은 과자와 식료품을 먹게 되지만, 그 재료가 되는 옥수수, 팜유, 밀가루 등의 경우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기능도 알 수 없는 전자제품을 쓰고 있지만, 그것을 구동시키기 위해서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쓴다는 것은 동일하다. 다시 말해 복잡하다는 것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반드시 늘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바야흐로 ‘기후위기 시대’가 개막되었다. 한편에서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기후위기라는 하나의 거대한 핵심변수에 협착(狹窄)되어 대폭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도시사회의 복잡화로 인해 경우의 수가 되레 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말이 진실일까?

도시를 살면서 교통법규, 쓰레기 분리수거, 아파트 규약 등 사회제도는 복잡화되지만, 우리는 더욱 개인으로 분해되어 원자화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관계의 경우의 수는 줄고 있는 셈이다. 즉, 우리는 복잡하게 기능 분화된 사회제도에서 권리(=권력)를 가진 소비자이자 시민 중 한명일 뿐이다. 우리가 기능이 아닌 관계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왔던 감수성과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지 반문해볼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거대하면서도 복잡화된 도시사회는 익명의 낯선 개인들이 모인 무차별사회, 도리어 획일적인 사회를 의미할 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도시사회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농부들이 농토를 떠나 자유도시에 가서 가게점원, 의사, 변호사, 노동자 등으로 다양하게 재의미화되어 경우의 수를 늘렸다. 그래서 농부들의 입장에서는 자유도시는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있는 별천지와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농촌사회는 다기능적이고 전일적이고 통섭적이었던 반면, 자유도시는 기능 분화되고 복잡화된 질서였다. 그 과정에서 자유도시에는 골목상권과 도시와 지방을 잇는 전통시장, 사회적 경제 등이 발아하고 들끓는 도가니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메가시티의 등장은 3M(Mall, Mart, Multiplex)이라는 통속적이고 복잡하지만 획일화된 질서로 흡수되고 수렴되고 있는 중이다.

생태학에서 복잡계(complex system)에 대한 논의는 여러 경우의 수를 갖고 하나의 인과관계만이 아니라 다양한 상관관계가 지도를 그리는 시스템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복잡계는 도리어 복잡성이 아닌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콤플렉스(complex)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심리학에서의 위상은 이러한 설명방식과 차이를 갖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를 비롯한 심리학에서의 콤플렉스는 하나의 문제 상황에 사로잡히는 것, 즉 협착 속에서 다양한 심리적 복잡성을 띠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콤플렉스에 직면한다는 것은 하나의 지점에 사로잡혀 복잡한 생각을 하는 것이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그 내부에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쥘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는 콤플렉스라는 개념에 변형과 수정을 가해서 배치(agencement)라는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배치는 구조처럼 불변항이 아니라, 관계 맺기의 방법을 바꿈으로써 수정될 수 있는 인간과 비인간이 어우러진 관계망이자 동적 편성과 행렬, 배열 등을 의미한다. 어떤 부분에 협착되어 심리적 복잡성을 갖는 것은 결국 배치를 재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셈이다. 즉, 그것이 복잡한 심적 원인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우의 수로서의 배치라는 실질적인 관계를 바꾸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은 ‘복잡성 감축’이라는 개념을 말하는데, 복잡한 문제 자체에 하나하나 복잡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해결방안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복잡화된 도시사회의 시스템과 제도, 프로그램을 따라가면서 그것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단순하며 공동체의 관리와 통제권이 미치는 대안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의 고르디아스의 매듭(Gordian knot)처럼, 고르디아스 왕이 매듭을 풀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알렉산더가 단숨에 매듭을 잘라버리는 시원한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복잡한 문명의 해법은 단순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농이 되는 것, 나무를 심는 것,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등 단순하지만 경우의 수를 늘리는 것은 충분히 많다. 단순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는 것 즉, 복잡한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짐작하였듯이 경우의 수가 바로 배치이다.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를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쩔쩔 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지만 경우의 수라고 할 수 있는 주변과 이웃,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작은 단서, 아이디어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양해지자. 관계를 통해 다양성을 생산하자.

편집부  pres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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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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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2019-06-24 13:34:56

    이건 그야말로 종이의 낭비,시간의 낭비.본인도 전혀 모르는 소리를 떠들고 있는 듯.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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